(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혈액에서 걷잡을 수 없이 염증이 진행되는 패혈증은 보통 염증보다 치료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요로감염증도 치료가 까다로운 감염 질환으로 꼽힌다.
박테리아는 인체에 감염하자마자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체내 환경에 염분이 많거나 강한 산성인 경우 박테리아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직 내성이 생기지 않은 항생제가 투여되면 그것도 세균 입장에선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런 스트레스 요인이 세균의 생존에 필요한 주요 경로 가운데 어느 하나만 차단해도 세균 전체가 소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세균이 숙주 세포 내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종의 환경 적응인 셈이다. 이 발견은 끈질긴 세균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새로운 항균제나 백신 개발의 표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매슈 멀비 병리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발행하는 오픈 액세스 저널 '핵산 연구'(Nucleic Acids Research)에 논문으로 실렸다.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24일 올라온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유전자가 각각 한 종류의 단백질 생성 코드를 가졌다는 건 생물학의 기본 원리(dogma) 중 하나다.
일례로 운반 RNA(tRNA)는 각 유전자 고유의 코드를 보고 모든 단백질이 제대로 생성되는지 감독한다. 그런데 세포 안팎의 스트레스가 심할 땐 tRNA가 매개하는 단백질 생성 절차에 무작위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세균과 같은 생명체의 번성에 도움이 되는 신종 단백질이 이런 변화를 통해 간단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약간의 소음(noise)이 좋을 수도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과학자들은 말했다.
MiaA라는 세균 효소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 돌파구가 됐다. 숙주 내 환경 스트레스에 민감히 반응하고 세균의 단백질 발현 조절에도 핵심 역할을 하는 효소였다.
유전자 조작 생쥐 모델로 실험한 결과, MiaA 결핍 세균은 어떤 유형의 스트레스에 노출돼도 문제를 일으켰다.
MiaA 결핍 세균은 잘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패혈증이나 요로감염증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흥미롭게도 MiaA가 과도히 발현하는 세균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논문 공동 제1 저자인 매슈 블랑코 박사는 "세균 스트레스 반응을 최적화하는 MiaA의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 존재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골디락스 존'은 천문학에서 쓰는 용어로 지구와 유사한 조건을 갖춰 물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항성 주변 구역을 말한다.
MiaA 발현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MiaA를 아예 제거하면 DNA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뉴클레오티드가 부가되거나 결실되는 이른바 '프레임 시프팅'(frameshifting) 현상이 무작위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운반 RNA가 'cat cat gta'라는 유전자 코드를 옮길 때 'atc atg tag'로 읽히는 것과 같은 신호 교란이 벌어졌다. 세균에게 프레임 시프팅이 생기면 주요 단백질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고 엉뚱한 단백질이 만들어졌다.
또 MiaA 발현도가 변함에 따라 세균 스트레스 반응 경로에 쓰이는 대사물질의 활용 가능성도 달라졌다. 세균 스트레스 내성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경로망'(web of pathways) 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게 MiaA라는 의미다.
멀비 교수팀은 특정 유형의 암이나 대사질환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인간 버전(version)의 MiaA도 확인했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멀비 교수는 "세균 MiaA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암과 비감염 질환 연구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멀비 교수팀은 숙주 세포의 환경 스트레스가 어떻게 세균 MiaA 수위를 바꾸는지 밝히는 걸 다음 연구 목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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