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코로나19 이후 적잖은 타격을 입은 임상시험위탁기관(CRO) 시장에 변화가 일고 있다. 금년들어 굵직한 글로벌 CRO들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향후 분산형 임상시험(DTC)이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국내 CRO 업계도 원격임상의 적극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DTC는 전자자료 수집 및 전자 임상결과 평가·중앙기반 모니터링 등 비대면 임상 플랫폼을 일컫는다.
한국바이오협회는 14일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협회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CRO 간 DTC 관련 인수합병이 활발한 추세다.
지난 2월 세계 CRO 7위 규모의 Icon사가 5위인 PRA사를 인수했다. 양사 간 120억달러의 M&A가 진행됐다.
Icon 측은 “PRA의 모바일 연결 헬스 플랫폼 등과 Icon의 현장 네트워크·홈 헬스서비스·웨어러블 기기 분야 등을 결합해 DTC 등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Icon은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모바일 헬스기술과 도구(Tool) 도입을 가속화했다”며 “환자 치료를 가속화할 수 있는 인력과 데이터·기술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시약·장비 기업인 Thermo Fisher사는 지난 4월 CRO 3위 규모의 PPD사를 인수하며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PPD는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임상 파트너사로 참여했는데,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16.1% 성장했다.
이달 2일 CRO 상위 10위권인 Parexel도 골드만삭스와 EQT사모펀드에 85억달러에 인수된다고 발표했다.
Parexel은 DTC와 생물통계·데이터 관리 분야에 강점을 지닌 기업으로, 현재까지 160건 이상의 DTC를 수행했으며 200건 이상의 환자 원격임상 참여 경험 등을 보유하고 있다.
Parexel 측은 “두 기업이 가진 컴퓨터 시뮬레이션 임상시험, 플라스미드 DNA 제조 등 바이오기업에 대한 경영·성공적 투자 경험이 자사 비즈니스 확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처럼 글로벌 CRO들의 새로운 주안점은 DTC다. 코로나19 백신 임상과 같은 긴급 임상시험 수요가 늘며 임상 정보의 신속한 교류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환자의 방문이 불가능해도 연구의 연속성이 보장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에 발맞춰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관련 규제기관들은 팬데믹 기간 내 원격모니터링 임상시험을 허용하는 긴급지침을 마련하거나 장려 중이다.
실제 모더나는 지난해 코로나19 mRNA 백신의 임상시험에서 스마트폰으로 임상데이터를 수집해 임상 대상자들의 의료기관 방문을 최소화하기도 했다.
"환자 중심 비대면 원격임상시험 설계 제약사 늘어날 듯"
바이오협회는 “최근 대형 M&A 양상을 보면 환자 중심 비대면 임상시험 역량을 강화키 위해 DTC 관련 인수합병이 지속 추진될 것”이라며 “CRO와 가상 임상시험 플랫폼·온라인 모집·원격 모니터링 솔루션 공급업체와의 협력 기회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협회는 또한 “제약기업들은 연속성 있는 임상시험과 비용 절감 등을 목표로 CRO와 협력해서 원격임상시험을 설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 국내 CRO의 경우 개인정보보호 및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제 등 여러 제약 때문에 원격임상은 고사하고 임상시험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CRO업체 관계자는 “원격임상이 세계적 추세인데 국내는 전자동의서를 받는 것은 가능해도 온라인 임상을 위한 병원과 제약사들 협조가 부족하다“며 ”개인정보보호 등의 제한이 적잖아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CRO사 관계자는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제를 지적했다. 이 제도는 2007년 시행된 ‘약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포함됐는데,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그는 “현재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역별 다양한 병원이 참여한다면 보다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며 “필요시에는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환자관리를 지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해외 某 임상지원기업 한국인 대표는 “한국도 이제 전통적 임상 방식에 머물지 않고 원격임상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며 “팬데믹 상황에서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임상을 수행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