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구교윤 기자] 최근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이종(異種)장기 이식 시대를 향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신장을 뇌사자 체내에 이식하는 수술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제이미 로크 박사가 이끄는 앨라배마대 의료진은 미국이식학회저널에 실린 논문을 통해 “지난 9월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57살 남성 짐 파슨스 신체에서 신장을 제거하고 대신 유전자 조작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식 수술 23분 만에 돼지 신장이 소변을 생성하기 시작했고, 이후 사흘 동안 정상적으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돼지 신장에 대한 인체 거부반응은 없었으며, 수술받은 뇌사자가 돼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것은 물론 혈액에서 돼지 세포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돼지 심장을 이식했다.
미 메릴랜드대 의대는 지난 7일 말기 심장 질환을 앓는 57세 남성 환자 데이비드 베넷 시니어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했다.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심장 박동도 혈압도 정상적이고 완전히 그의 심장이 됐다”며 “이번 수술이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돼지는 사람과 장기 크기가 비슷하고 영장류와 달리 사육하기 쉽고 6개월이면 성년으로 자라기에 인간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동물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심장 크기는 사람 심장 94% 정도로 해부학 구조도 유사하다.
현재 돼지 심장 판막은 일상적으로 이식되고 있다. 일부 당뇨병 환자는 돼지 췌장 세포를 화상 환자는 돼지 피부를 이식받고 있다.
이종장기 이식 최대 걸림돌은 면역 거부 반응이다. 이를 막기 위해 유전자가 조작된 돼지 장기가 쓰인다.
인간 면역 체계는 돼지 장기 표면에 있는 ‘알파갈(α-gal)’이라는 단백질 성분을 공격하기 때문에 알파갈을 제거하는 유전자 변형 단계를 거쳐야 한다.
미국에서 이어지는 이종이식 사례는 이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넨바이오·옵티팜 등 국내서도 임상 진행
현재 국내에서도 이종장기 이식 연구 개발이 한창이다. 특히 기업들이 임상을 준비하고 있는 데다,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는 5월까지 이종장기 임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 뒤 전문가 자문단을 거쳐 최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선 제넨바이오가 가장 앞선 상태다. 제넨바이오는 무균돼지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임상이 승인되면 가천대 길병원과 함께 환자 2명을 대상으로 돼지 췌장안에 있는 췌도 세포덩어리를 인체에 주입한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혈당 유지가 어려운 1형 당뇨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이다. 잦은 인슐린 주사로 저혈당증이 발생해 빈번히 의식을 잃는 등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넨바이오는 국내 이종췌도이식 잠재적 대상자가 국내에만 약 50만명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옵티팜도 올 하반기 영장류에 돼지 췌도세포를 이식하는 전임상시험에 나설 계획이다.
본격적인 전임상에 앞서 영장류 3~4마리에 돼지 췌도세포를 이식해 예후를 평가한 뒤 하반기엔 8마리를 대상으로 전임상을 한다는 구상이다.
한편,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장기 기증자는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환자 11만 명 정도가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매년 6000여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 지난해에는 3800명만 장기 기증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향후 부족한 장기기증 유일한 대안은 이종장기 이식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윤리적인 문제 역시 중장기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