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 사망은 대부분, 원발 암이 다른 부위로 옮겨가는 전이암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전이암엔 아직 확실히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
암세포가 성장해 다른 곳으로 전이하려면 일단 면역계의 공격을 피해야 한다. 암세포가 인간 면역계를 무력화하는 데 쓰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신무기가 발견됐다. 나중에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는 면역세포를 무장 해제시키는 일종의 선제적 '면역 회피' 메커니즘이다.
암세포는 머리카락 두께의 1천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노 촉수를 연결해 면역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빨아들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이렇게 제거되면 면역세포는 완전히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암세포의 이런 기괴한 행동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확인된 건 처음이다.
이 연구는 미국 하버드의대의 주요 수련병원 중 하나인 '브리검 여성 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과 매사추세츠 공대(MIT) 과학자들이 함께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18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실렸다.
이 발견이 주목되는 건, 완전히 새로운 차세대 항암 면역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리검 여성 병원 '공학 치료 센터(Center for Engineered Therapeutics)'의 공동 소장인 쉴라디티아 센굽타(Shiladitya Sengupta) 박사는 "면역계가 억제돼 암세포에 전이 능력이 생겼을 때 암은 환자의 생명을 앗아간다"라면서 "암세포가 면역계에 침투하는 데 이용하는 이 메커니즘은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의 초점은 나노 수준에서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하는 데 맞춰졌다.
센굽타 박사와 동료 과학자들은 T세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면역세포를 생쥐의 유방암 세포와 함께 배양한 뒤 첨단 '전계 방출 주사형 전자현미경(FESEM)'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다. 여기서 암세포와 면역세포가 덩굴처럼 보이는 나노튜브(nanotube)로 연결된 게 포착됐다.
이 튜브의 너비는 100∼1,000㎚(1㎚=10억분의 1m)에 불과했다. 이는 사람 머리카락(8만∼10만㎚)의 최대 1천분의 1밖에 안 된다. 이런 나노튜브가 여러 개 결합해 더 두꺼운 튜브를 형성한 경우도 보였다. 암세포는 이 튜브를 통해 T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빨아들였다.
연구팀은 암세포의 이런 미토콘드리아 '납치'를 차단하면 종양의 성장이 억제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폐암과 유방암이 생기게 조작한 생쥐 모델에 나노튜브 형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실제로 종양 성장이 눈에 띄게 줄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탄모이 사하 박사후연구원은 "항암 면역치료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병행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라면서 "기존의 항암 면역 치료제와 함께 이 나노튜브 억제제를 환자에게 투여해 효과를 확인할 만한 의학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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