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바이러스가 재감염했을 때 인체 면역계는 바이러스 항원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반응한다.
그런데 계절 독감 같은 일부 바이러스에서는 항원이 변해 진화하는 '항원 변이'(antigenic drift)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면역계는 다시 침입한 바이러스를 알아보기 어려워 면역반응도 일으키지 못한다.
신종 코로나(SARS-CoV-2)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감기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의 '면역 회피' 진화 흔적이 발견됐다.
코로나계 바이러스 표면에 돌기처럼 뻗어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은 인체 면역계의 주요 표적이다.
만약 신종 코로나도 이런 식의 진화를 한다면 항원이 변이할 때마다 백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미국 워싱턴 의대와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 과학자들은 이런 요지의 논문을 19일(현지 시각) 저널 '이라이프'(eLife)에 발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명칭은 표면을 덮고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 돌기가 왕관(corona)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코와 목 등에 가벼운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HCoVs에 주목했다. 이런 감기 코로나는 오래전부터 인간들 사이에 퍼져, 인간의 면역계에 저항하는 진화 압력이 바이러스 항원에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감기 코로나 4종의 유전자 서열을 컴퓨터로 분석해 진화 과정을 추적했다. 특히 스파이크 단백질처럼 주요 항원이 될 수 있는 바이러스 단백질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절반인 2종(OC43, 229E)의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높은 비율의 진화 흔적이 발견됐다.
바이러스에 이로운 대부분의 변이는, 인간 세포에 감염할 때 도움을 주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특정 영역(S1)에 집중돼 있었다. 이 발견은 신종 코로나의 '면역 회피' 변이 가능성을 보여줘 주목된다.
또 흔한 감기 코로나의 감염이 장기간 반복되는데도 면역이 안 되는 이유도 설명한다.
감기 코로나가 인간 면역계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 항원 변이로 면역 반응이 봉쇄된 상태에서 쉽게 재감염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감기 코로나에 이로운 스파이크 단백질의 변이는 대략 2, 3년에 한 번꼴로 일어난 것 같다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는 H3N2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나타나는 변이 주기의 절반 내지 3분의 1에 해당한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 트레버 베드퍼드 박사는 "신종 코로나 등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같은 방향으로 진화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라면서 "(만약 그렇다면) 신종 코로나 감염증 백신을 새로운 변종에 맞춰 계속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