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포 분열이 계속 일어나면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지고 텔로미어의 염색체 보호 기능도 떨어진다. 그러다가 텔로미어가 너무 짧아져 한계점에 이르면 세포는 분열을 중단하고 스스로 죽는다.
오래전부터 텔로미어의 단축과 기능 이상은 세포 노화 및 노화 관련 질환과 관련이 있을 거로 추정됐다. 이런 질환엔 암도 포함된다.
과학자들에게 텔로미어는 아주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짧아진 텔로미어를 다시 길게 늘이면 노화를 방지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큰 것이다.
세계적인 연구 중심 명문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스위스 로잔 연방 공대(EPFL) 과학자들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은 TERRA라는 비암호화(noncoding) RNA가 염색체 말단의 텔로미어에 축적되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TERRA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정보는 갖고 있지 않지만, 염색체의 구조적 요소로서 텔로미어의 길이와 기능을 제어하는 데 관여한다. TERRA가 염색체 말단에 쌓이면 짧아진 텔로미어가 복원될 수도 있을 거로 과학자들은 믿는다.
EPFL의 요아힘 링너 교수 연구팀은 최근 저널 '네이처(Natur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15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올라온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TERRA 분자는 2007년 링너 교수팀에 속해 있던 클라우스 아찰린 당시 박사후연구원에 의해 발견됐다.
TERRA는 텔로미어가 배아줄기세포의 분화를 제어하는 과정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텔로미어에만 존재하는 TRF1 유전자가 TERRA를 통해 '전(全) 분화능(pluripotency)'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국립 중앙 암연구소(CNIO)의 마리아 블라스코 박사 연구팀은 작년 8월 과학 저널 '이라이프(eLife)'에 이런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
EPFL 연구팀이 이번에 밝혀낸 건 TERRA가 어떻게 텔로미어까지 이동해 축적되느냐 하는 것이다.
링너 교수는 "텔로미어는 작은 염색체 DNA 조각으로만 이뤄져 TERRA가 어떻게 텔로미어에 도달하는지 궁금했다"라고 말했다.
실험 결과 TERRA가 텔로미어에 도달하면 몇몇 종류의 단백질이 TERRA와 텔로미어의 결합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RAD51이라는 효소였다. RAD51은 손상된 DNA의 복구에 관여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엔 TERRA가 텔로미어 DNA에 달라붙어 'RNA-DNA 잡종 분자(RNA-DNA hybrid molecule)를 형성하는 데 RAD51이 도움을 주는 거로 나타났다.
세 가닥(three-stranded) 핵산 구조를 만드는 이런 유형의 반응은 주로 DNA 복구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TERRA가 결합했을 때 텔로미어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는 게 처음 확인됐다. 이는 '패러다임 전환' 수준의 발견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짧은 텔로미어가 긴 텔로미어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TERRA를 끌어들이고 이를 RAD51 효소가 조절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어떤 기제가 작용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DNA 손상이나 많은 횟수의 세포분열로 텔로미어가 너무 짧아지면 텔로미어 스스로 TERRA 분자를 불러들이는 거로 과학자들은 추정했다.
연구팀은 다음 목표는, 다른 비암호화 RNA와 텔로미어의 결합에도 RAD51 효소가 개입하는지 확인하고, TERRA와 텔로미어 결합을 조절하는 기제의 특징을 더 상세히 규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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