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뇌 모세혈관의 내피세포는 밀착연접을 형성해 고분자 또는 친수성 물질의 통과를 막는다.
이렇게 뇌척수액과 혈액을 분리해, 혈액 내 병원체나 잠재적 위험 물질로부터 몸의 주요 조절 중추를 보호하는 메커니즘을 '혈뇌 장벽(BBB; Blood-Brain Barrier)이라고 한다. 뇌에 병이 생겼을 때 치료가 어려운 것도 BBB가 약물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수용성 분자가 BBB를 통과하려면 특별한 채널이나 운반체 단백질이 필요하다. 예컨대 뇌에 도움이 되는 유익 물질을 운반하는 단백질은 BBB를 투과한다. 일부 바이러스는 이런 유익 물질 운반체로 위장해 BBB의 방어막을 뚫고 뇌 조직에 침투한다.
바이러스처럼 BBB를 투과해 뇌의 목표 부위에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을 영국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뇌에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유전 형질로 수용성 미세 입자를 합성한 뒤 약물을 입자에 담아 정맥에 주사하는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동물 실험에서 이 입자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다.
영국 뉴캐슬대 약대의 모에인 모기미 약학·나노 의학 교수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온라인에 공개된 보고서 개요( 링크 ) 등에 따르면 뇌 신경질환 치료 약을 목표 부위에 전달하려면 유전자를 조작한 바이러스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에 약물을 담는 게 현재 의술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정맥을 통해 뇌척수액에 약물을 주입하기도 하는데, 이 방법도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모기미 교수팀은 뇌에 침투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fd)의 유전 형질 펩타이드(아미노산 분자)로 바이러스 크기의 미세 입자를 합성했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숙주로 삼는 일군의 바이러스를 지칭하는데, 세균을 녹여 증식한다는 뜻에서 그냥 '파지(phage)' 또는 세균 바이러스라고도 부른다.
합성된 펩타이드를 간단히 조작해 물을 첨가했더니, 털이 난 듯한 입자(hairy particle) 형태로 변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생쥐의 정맥으로 주입된 합성 입자가 혈뇌 장벽을 통과해 뇌의 신경세포와 소교세포에 도달한다는 걸 검증했다. 이 입자는 뇌 안으로 유익 물질을 옮기는 운반체처럼 작용해 BBB를 통과했다.
모기미 교수는 "혈뇌 장벽을 통과하는 건, (제약산업이) 중추신경계 질환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데 장애가 돼 왔다"라면서 "이번에 열린 돌파구는 혈뇌 장벽과 다른 생물학적 장벽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