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지멘스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지멘스가 자사 CT 및 MRI를 수리하는 중소 유지보수 사업자를 배제한채 관련 시장을 독점화하고 있다며 시정명령 및 62억원(잠정)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멘스는 병원이 중소 사업자와 거래하는 경우 장비 안전관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사용조건 등을 차별하고, 다른 병원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내부 엔지니어용 서비스를 유상으로 판매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이런 행위로 관련 사업자가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으며, 병원은 안전검사가 지연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유지보수 가격인상 등에 대응해 타 제조사의 서비스 이용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게 공정위의 지적이다.
공정위 측은 “특히 중소병원의 경우 향후 비용 부담으로 부분적 유지보수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고 실제로 장비구매 시점에 유지보수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진술이 다수 확인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데일리메디 취재결과 대형병원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병원 구매팀에서 장비구입 및 유지보수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진이 체감하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도 “지멘스 제품의 경우 본사에서 직접 나와 수리를 하고 있어 별도 서비스를 제공받을 필요가 없다”며 “소프트웨어 보안 문제도 있기 때문에 병원 측에 공개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지적한 문제점은 주로 중소병원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중소병원협회 고위 관계자는 “특정 회사나 제품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의료장비 보증기간이나 A/S서비스에 대한 차별 대우는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CT나 MRI같은 대형기기뿐만 아니라 소형 제품, 치료재료 등도 다른 병원의 구입가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며 “우리로서는 기기 회사에서 말하는 대로 믿고 수리비용 등을 지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 중소병원 원장은 “보증기간이 터무니없이 짧거나 A/S 비용이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지멘스 사건은 같은 맥락에서 먼저 터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제조사 등이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병원에 불이익을 주더라도 구매팀이나 시설관리 인력을 마련해 대응할 여력이 없는 중소병원으로서는 특별한 선택권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의료기기업체의 영업전략이 결과적으로 ‘깜깜이 서비스’를 초래하기도 한다.
의료기기는 그 특성상 가격협상이 하나의 판매수단이 되는데, 제품 가격의 차이로 추가 옵션이나 보증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한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같은 제품이라도 병원마다 판매가격이 다른 건 사실이다. 보증하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경우에는 서비스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구입할 때 보증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라며 "무조건 다른 병원과의 서비스 내용을 비교하기 보다 구입 당시 조건을 잘 살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멘스는 공정위의 처분에 불복하며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지멘스 측은 "공정위 지적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고 공정거래법을 잘못 적용한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의료장비 유지보수의 주된 상품인 CT 및 MRI 판매시장에서 세계적인 선도기업들과 치열한 가격 및 혁신 경쟁을 하고 있다"며 "고객들이 다양한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시장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유지보수 소프트웨어를 무상 제공하라고 명령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결정"이라며 이번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