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의료기기 업체 지멘스에 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키로 발표한 가운데 일선 개원가에서는 비단 특정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글로벌 대형 의료기기 업체의 갑질과 횡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는 전언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멘스에 대해 CT, MRI 유지 보수 시장에 신규 진입한 중소 유지 보수 사업자를 배제한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 및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병원이 중소 유지보수 사업자와 거래하는지 여부에 따라 장비 안전관리 및 유지 보수에 필수적인 서비스 소프트웨어의 사용 조건(가격, 기능, 제공에 소요되는 기간)을 '차별'한 것이 드러났다는 판단에서였다.
경기도 분당 소재 영상의학과의원 A원장은 “의료기기 업계와의 관계를 보면 규모가 큰 대형병원과는 달리 개원의는 또 한편의 ‘을’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지 허탈감을 느끼는 개원의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A원장은 “영상의학과의사회에서 수 년 전 이른바 ‘갑’의 횡포에 무력한 ‘을’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수원에서 영상의학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B원장은 본인의 경험을 소개하며 그 이후로는 다시는 글로벌 업체의 장비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B원장은 “진단 분야에서 매우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여서 별다른 의심없이 4000만원을 주고 장비를 구입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워런티(보증) 기간이 끝나고 나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생겼다”고 떠올렸다.
B원장은 “고장이 나 장비 수리를 요청했더니 업체의 이야기인 즉 1800만원 가량이 추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또 고장이 날 수 있으니 유지 보수 계약을 위해 한 달에 80만원씩 비용을 지불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
다”고 말했다.
그는 “고민 끝에 유지 보수 계약을 안 하는 방향으로 했는데 2~3개월 만에 또 고장이 났다”며 “유지 보수 계약을 맺고 3년을 유지하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화가 났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갑’이 구축한 시장 질서를 깨야겠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라리 이 장비를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일부 개원의들은 초음파 등 장비를 직접 만져 보고 사용을 하다가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본인이 적응을 하면 되겠지라고 체념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유지 보수로 돈 벌이를 하는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에 대한 제재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고 덧붙였다.
B원장은 “성능에 있어 물론 글로벌 의료기기의 품질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며 “하지만 유지 보수와 관련, 개원의들의 반발 심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장비 자체가 원가 대비 어느 수준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
했다.
영상의학과의사회 전(前) 임원은 "중소병원은 물론 개원의들의 피해 사례를 수집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영상검사 수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의원 경영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며 "장비 관리 비용마저 비합리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면 개원의들은 갈수록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