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한 제약회사가 토양 샘플에서 자연 상태의 케다시딘(Kedarcidin)을 처음 추출한 건 1992년이다.
일종의 복합 색소단백질인 케다시딘은 오래지 않아 과학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슈퍼 물질(super substance)'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케다시딘이 항생제 내성을 가진 병원균뿐 아니라 암 종양에도 잠재적 치료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다시딘의 생물학적 기전은 불안정했다. 작용하는 표적에 DNA 손상을 가하는 데다, 분자 구조도 매우 복잡했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가 장기간 연구했는데도 자연 상태의 케다시딘을 완전하고 정확한 형태로 합성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영국과 일본의 두 화학 교수가 드디어 케다시딘을 완벽하게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케다시딘 합성에 성공한 주인공은 영국 링컨대의 마틴 리어 교수와 일본 도호쿠대의 히라마 마사히로 교수다.
두 교수는 연구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저널 오브 앤티바이오틱스(Journal of Antibiotics)'에 발표했다고 링컨대 측이 24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두 교수가 케다시딘 연구에 뛰어든 건 발견 5년 뒤인 1997년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분자 구조를 확인하는 데만 10년이 걸릴 만큼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리어 교수는 "화학반응을 하는 중심부를 단백질이 망토처럼 싸고 있는 구조여서, 스카치 에그(삶은 달걀을 다진 고기로 싸 튀긴 요리)와 비슷해 보였다"면서 "기본 구조를 알아낸 후에도 고난도 분자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야 해 다 합쳐 2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암이나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와 맞서 싸우는 데 유용한 새로운 분자적 통찰과 전도유망한 메커니즘을 발견했다"면서 "차세대 항생제와 항암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식과 화학적 능력을 겸비하게 된 것"이라고 자평했다.
의학계에서 케다시딘 합성을 고무적으로 보는 건 당연하다.
오는 2050년이면, 매년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 인구가 현재보다 1천만 명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나와 있는 항생제가 모두 듣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쓸 만한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이번 연구결과는 중요한 진전이 될 수 있다.
특히 백혈병이나 흑색종같이 공격적인 암의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케다시딘을 주목하고 있다. 인공 합성에 성공했다는 건 머지않아 양산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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