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上/임수민‧이슬비 기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 국내 소아청소년과 붕괴가 시작됐다. 저출산과 코로나19 장기화, 기피과 낙인 효과 등으로 수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기근 현상이 지속돼 소아진료를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의료기관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경인권 대표 의료기관인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 12일 "전공의 인력 부족으로 입원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밝히며 소아청소년 입원 진료를 잠정적으로 2022년 12월부터 2023년 2월 말까지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더욱 심각한 위기는 젊은 의사들의 소청과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인력은 내년도 전문의 시험을 앞둔 4년차 170명, 3년차 120명, 2년차 70명, 1년차 50명 뿐이다. 최근 진행된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를 희망한 예비전공의는 33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속 다른 상급종합병원들도 의료진 인력난을 이기지 못하고 소아진료 축소 및 폐쇄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영유아 및 소아, 청소년 진료 붕괴가 한층 더 심화될 전망이다. [편집자주]
소아청소년과 진료 위기는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데일리메디가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진료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수년간 누적된 인력난으로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여러 상급종합병원들이 소아진료 축소를 고민하고 있었다.
길병원 인근에 위치한 인천성모병원은 의료인력 부족으로 현재 소아응급실을 저녁 10시까지 축소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시간을 더 단축해 운영해야 할 처지다.
인천성모병원 관계자는 “현재 우리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단 한명도 없다”며 “교수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 있는데 고충이 커 내년에는 응급실 운영 시간을 더 축소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답답한 상황을 토로했다.
국립대인 충북대병원 또한 내년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사직 등으로 입원 진료 및 응급실 운영에 위기가 찾아왔다.
병원 관계자는 “지금은 외래와 입원진료, 응급실 등을 모두 정상운영하고 있지만 당장 내년도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2명이 사직한다는 얘기가 있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인력이 빠지면 응급실은 물론 입원도 힘든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24시간 소청과 전공의 상주 병원, 36% 불과…강남세브란스‧부산백병원 등 축소 운영
늦은 밤이나 공휴일 등 아이가 크게 아플 때 진료받을 수 있는 소아응급실 운영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 80개 수련병원(전공의 교육을 담당하는 2차ㆍ3차 의료기관) 가운데 24시간 소아과 전공의가 상주하며 소아 중환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29개(36%)에 불과하다. 전체 3곳 중 2곳 정도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소아응급실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일·공휴일에는 오후 5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운영 중이었지만, 지난 10월 24일부터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전면 축소했다.
당초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3,4년차 전공의는 정원을 채웠지만 2년차는 한명도 없었고, 1년차는 한 명뿐이었다. 이 같은 정원 미달 상태로 힘겹게 가동해오던 소아응급실이 결국 1년차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불가피하게 진료시간을 단축하게 됐다.
병원 관계자는 “현재 소아청소년과 외래 진료는 정상 운영 중이지만 입원진료는 축소 운영 중이며, 이미 소아병동에 성인 환자를 같이 받고 있는 상태”라며 “내년에는 입원진료를 더 축소해야 할 것 같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이대목동병원 또한 지난 9월 1일부터 외상 환자를 제외한 소아 환자의 응급 진료를 전면 중단했다.
소아 환자가 응급실을 찾으면 평일 낮에는 외래 진료로 대체하고, 밤이나 공휴일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이대목동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지만 소아외상환자 등 일부는 진료를 보고 있다”며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소아외래를 통해 진료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역시 고강도 당직 체제가 이어지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병원 측은 “현재 외래, 입원 진료 모두 정상 운영되고 있지만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현재 최대한으로 당직을 서고 있어 매우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권역의료기관으로서 소아청소년과 폐쇄는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되면서 열 나는 환자 수용 불가도 소청과 입원 축소 계기
중앙대병원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열이 나는 환자 수용이 불가해지는 등 입원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축소해왔다.
현재 이곳 소아응급실은 오전부터 자정까지 운영하는데, 이후 시간에는 소아청소년과 교수 대신 다른 당직 의사가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양대병원도 소아응급 진료공백을 막기 위해 소아전담전문의를 상주시키고 있다. 오후 5시 30분까지는 소아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고, 그 외 시간에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별도의 자격을 취득한 소아전담전문의가 진료를 본다.
부산백병원은 진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외래, 입원진료 모두 정상 가동하고 있는 대신 야간 응급실의 경우 일부 진료를 제한했다.
부산백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전담전문의를 배치해 소아응급실을 운영 중인데, 야간에는 신규 환자 받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