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전국 병원 현장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가 제도 확대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중소병원은 물론 대형병원들까지 앞다퉈 간호간병서비스 병동을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선 병원에서는 환자 가려 받기 행태가 벌어지고 있어 제도의 본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교적 손길이 적게 가는 경증환자 중심으로 간호간병서비스가 제공되다 보니 정작 해당 서비스를 받아야 할 거동 불편환자 등은 오히려 소외되는 실정이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간호’만 있고 ‘간병’은 없다며 현행 사업의 실효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편집자주]
#.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A씨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간호간병서비스 병동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병원 측 고사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루 10~12만원에 달하는 간병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그에게 지인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소개했고,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병원을 찾았다. 2만원도 안되는 본인부담금으로 별도의 간병비 없이 간호와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그는 해당 병원으로부터 “대소변 관리가 안되는 환자는 입원이 불가하다”며 단박에 거절당했다.
#.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B씨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관련해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토로하기 위함이었다. 사고로 경추를 다친 오빠가 중증장애로 입원치료 중이었는데 해당 병원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한다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평소 해당 서비스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B씨는 내심 간병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하루 빨리 공사가 마무리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공사가 끝날 무렵 해당 병원은 오빠의 경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용이 불가하다며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요구했다.
‘간병비 파산’ 막아줄 묘책으로 등장한 통합서비스
“입원환자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뿐만이 아닙니다. 간병비 또한 만만찮은 걱정거리입니다. 적어도 간병비로 가정경제가 파탄으로 내몰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간병비 부담을 덜어 줄 해법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시했다.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 간호인력이 입원환자를 직접 돌보는 제도다.
환자 회복에 필요한 전문간호를 포함해 개인위생, 식사보조, 체위변경 등 기본간호까지 제공된다. 이용 금액도 개별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건강보험 지원으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하루 약 2만원 정도다. 적은 비용으로 상질의 서비스를 받게된 셈이다.
사실 ‘간병비 파산’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건 박근혜 정부였다.
박근혜 정부는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등을 환자 부담을 키우는 가장 심각한 3대 비급여로 규정하고, 이들 항목에 대한 급여화를 선언했다.
이 중 간병비 급여화를 위해 2013년 간병인을 두지 않는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2015년 메르스 사태로 병원 내 감염이 화두로 부상하면서 해당 사업에 힘이 실렸다.
환자 곁에서 생활하는 보호자를 통한 병원 내 감염 위험을 없애고 간병비 부담도 줄이기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명칭을 바꿨다.
2016년 9월부터 건강보험 영역으로 편입시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문재인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속도를 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534개 병원, 4만9000여 병상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이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 수는 125만9363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무려 40.3% 가량 급증했다. 병상수와 이용환자 모두 급증세다.
오는 2022년까지 총 10만 병상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토록 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중증환자 외면하는 병원들
표면적으로는 환자들의 간병비 부담이 확 줄어들고 상질의 간호서비스를 받는 환자들이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완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동참하고 있는 대부분의 병원들이 경증환자 위주로 병동을 운영하면서 정작 이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환자들이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진료비 부담이 큰 급성기 중증환자가 간병비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을 해결해 주고자 도입된 서비스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제시된 사례에서 보듯 현재 대부분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단기시술이나 단기항암환자 위주로 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 선별은 병원에서 자체 지침을 마련, 운영하고 있으나 의식이 혼미하거나 대소변 관리가 어려운 환자 등을 제외하다 보니 손길이 적게 가는 경증환자만 입원시키는 왜곡이 만연하고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사업 지침에도 이러한 문제는 여실히 담겨 있다. 사업 참여 기준 대부분이 인력에만 맞춰져 있고 입원환자의 중증도는 아예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실제 해당 지침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은 환자 7명 당 간호사 1명, 종합병원은 10명 당 1명, 병원은 12명 당 한명을 배치토록 했다.
여기에 간호조무사, 병동지원인력 등의 기준도 명시하고 있다. 배치 인력이 많을수록 더 많은 수가를 받도록 하는 모형이다.
하지만 입원환자의 중증도는 제시돼 있지 않다. 아예 ‘환자 상태 중증도와 질병군 제한이 없으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용에 동의한 환자’로만 입원자격이 명시돼 있다. 결국 병원들이 얼마든지 환자를 골라 받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대한간호협회 조정숙 이사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꼭 필요한 중환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는다”며 “당초 목적에 부합하는 대상자가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회장은 “진정 간병이 필요한 중증환자부터 우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점차 경증환자로 확대했어야 하는데 제도 도입 당시 재정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원환자 중증도 반영 시급
작금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원환자의 중증도를 반영하는 기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금처럼 각 병원이 임의로 입원환자를 가려 받는 구조가 아닌 입원기준에 일정 수준 이상의 중증도를 반영하거나 인센티브 등의 유도기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입원환자의 53.1%만이 돌봄이 필요하고, 나머지 47%는 자가관리가 가능한 환자다.
때문에 중증도 기반의 간호 필요도를 정확히 측정하고 이를 근거로 간호인력 배치와 사후평가까지 연계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경증환자 위주 운영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입원환자 중증도 반영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보장지원실 간호간병제도부 관계자는 “일선 병원들의 경증환자 선호 문제는 인지하고 있다”며 “보완책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입원환자 중증도 기준 마련, 수가 차등제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며 “꼭 필요한 환자가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태생 배경이 간병비 부담 경감인 만큼 모든 입원환자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의료인력 문제 등으로 부분적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 해당 사업에 참여 요건이 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총 병상수는 25만개. 정부는 이 중 10만개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으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이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들의 만족도를 감안하면 제도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보건복지부 최근 공개한 ‘2019 의료서비스경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용자의 만족도는 84.5%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한 경우(60.2%) 보다 월등히 높았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아직은 시범사업 단계인 만큼 완연한 제도 틀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2022년 본사업 전환시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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