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의 자녀에게만 설명하고 이에 대해 동의를 받은 전공의와 관련, 담당 교수를 설명 의무 위반으로 면허정지처분한 사례는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 책임은 교수가 아닌 전공의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는 신경외과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환자 B씨는 1948년생 여성으로 지난 2017년 8월 18일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두통 및 왼쪽 광대뼈 부위의 멍, 부종 증세로 A씨가 근무하는 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뇌 CT 검사 등을 통해 뇌경막화 혈종의 만성화가 진행됨으로써 만성 뇌경막하 혈종으로 성상이 변화됨을 확인했다.
응급수술 가능성을 예견한 전공의는 환자 B씨 자녀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미리 수술동의서를 받았다. 당시 수술동의서의 집도의는 A씨였다.
수술 없이 치료를 이어가던 다음 날 오전 11시경 의료진은 다시 환자 뇌 CT 촬영을 진행했고, 그 결과 출혈량이 줄지 않음을 확인하고 응급수술을 결정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전공의는 환자 자녀에게 새로운 수술동의서를 받았으며, 해당 수술은 A씨가 아닌 다른 교수인 E씨 집도로 진행됐다.
수술 직후 환자 의식상태가 저하되는 등 증상이 나타나자 E씨는 재수술을 시행했다.
이후 환자는 보존적 치료 및 만성 신부전에 대한 투석 치료 등을 이어가다 2019년 10월 폐렴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에 유가족은 환자가 수술 전 의사능력이 없다거나 직접 설명할 수 없는 특정한 사정이 없었음에도, 의료진이 환자에게 직접 수술을 설명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보건복지부 또한 2022년 2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의료법 등에 따라 15일간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A씨 “환자, 고령에 건강 상태 좋지 않아…보호자에게 설명 가능” 항변
하지만 A씨는 당시 B씨가 고령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보호자에게 설명해도 설명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뇌수술로 인한 사망 가능성 등을 설명하면 그 자체로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러한 경우는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한 보건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이유로 처분을 내렸는데, 설령 설명의무 위반이라 하더라도 설명 자체가 진료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처분의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행정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전공의가 받은 수술동의서와 관련해 A씨가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 주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첫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당시 환자 자녀는 전공의에게 설명을 들었고 집도 예정 의사는 A씨였지만 해당 수술은 실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 사건 수술에서 주로 진료한 의사는 직접 수술을 진행한 E씨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두 개의 수술동의서는 환자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순 집도의 변경에 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첫 번째 수술동의서에 근거한 의료행위는 없었기 때문에 A씨의 설명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재판부는 설령 A씨가 주치의 지위에 있더라도 설명 책임은 전공의에게 위임됐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A씨가 전공의에게 환자 자녀에게만 수술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지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는 수련을 받는 지위지만 의사면허를 보유한 전문 의료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책임 위임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