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두륜 변호(세승) |
포괄수가제 강제 실시와 수가 인하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 안과의사회에서는 백내장수술 거부를 선언했고 외과, 산부인과 등 다른 진료과에서도 동참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계는 포괄수가제 강제실시로 의료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강제적으로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의료의 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오히려 적정 진료로 인해 전반적인 의료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당장 의료비 지출이 줄어든다는 정부 발표에 국민들도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진료수가를 내세우면서 의료의 질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적정한 보상이 없이 의료의 질이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의 질이 보장되지 않을 때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환자이다. 환자는 ‘의료서비스’라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이다.
소비자 선택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서 의료시장과 같은 불완전 경쟁시장에서도 인정된다. 환자에게는 비용 못지않게 의료의 질이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용보다 의료의 질이 더 중요시되기도 한다. 이번 포괄수가제 강제실시에 있어서 의료의 질에 대한 환자 선택권이 충분히 고려됐는지 의문이다.
포괄수가제란 진료에 실제 투입되는 자원량이나 비용에 상관없이 일정한 보수만 지급하는 제도다. 따라서 과소 진료 내지는 저가의 진료를 부추길 수 있고 양심적인 의사보다는 비양심적인 의사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공공기관도 아닌 의료인에게 원가에도 못미치는 수가를 지불하면서 적정의료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정부가 7월1일부터 포괄수가제를 강제적으로 실시하는 이유는, 진료비를 획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 의료의 질 보장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정부가 원하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도 그럴까?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소수 의견처럼 모든 통제시스템은 한편으로는 통제권을 행사하는 측의 부패만연을, 다른 한편에서는 통제를 받는 측의 안일과 나태를,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혜자측의 과잉수혜를 걱정해야 하는 3중의 폐단을 지닌다.
포괄수가제 강제실시 역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포괄수가 강제실시에 반대하는 이유는, 진료수익의 감소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진료에 대한 획일적인 통제와 그로 인한 의료의 질 저하가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의료의 질은 정부가 통제한다고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통제하면 할수록, 의료의 질은 더 나빠질 수 있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획일적 통제의 성공 가능성을 너무 과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