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가능성을 시사하며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 구성에 적극 나서고 있고 대통령실도 기존 입장과 다르게 긍정적이지만 의료계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7일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논의를 다시 하지 못하는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한줄짜리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기도의사회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 사과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장상윤 사회수석을 파면하라"고 주장했다.
앞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내년 입학정원에 대한 논의가 없는 협의체는 의미 없다. 정부가 의료대란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번 의료사태에서 지속적으로 내년도 의대 증원 재검토를 요구한 의료계가 정원 논의를 2026년만으로 제한하는 협의체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반년만에 4자 협의체 추진…"전공의‧의대생 대변할 단체 들어와 달라"
지난 6일 오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공식 제안하며 협의체 구성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야당이 지난 3월부터 제안한 4자협의체 구성을 반년 만에 여당이 받아들인 셈이다.
한 대표는 이날 "의료공백 상황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필수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 및 운영하자고 제안했다"면서 "대통령실도 공감하는 사안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협의체 역할에 대해 "여‧야‧의‧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료개혁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의대 증원의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협의체 구성에 난색을 보이던 대통령실도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이날 YTN '뉴스퀘어'에 출연해 "2000명이라는 숫자에 구애되지 않고 합리적인 안을 가져오면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라며 "협의체가 구성돼 의료계 대표가 나와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충분히 논의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집단행동으로 이탈한 전공의들, 그리고 의대생들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 당사자들 목소리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단체나 사람이 협의체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醫 "2025년 증원 재검토 아니면 협의체 무의미"
그러나 정부와 여야 모두 현 시점에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조정할 수 없다는 견해에 대해 의료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2025학년도 입학정원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협의체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혹평했다.
전의교협은 "여당과 정부는 의료체계 붕괴로 국민 고통이 현실화된 지금에서야 약속한 듯 2026학년도 입학정원을 재조정할 의향이 있는 것처럼 말하며 협의체를 구성코자 한다"면서 "2025학년도 입학정원이 지난 5월 결정된 것처럼 2026학년도 입학정원도 이 시점에 급하게 논의할 주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과 정부가 진정으로 의료대란을 해결코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2025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9‧4 의정합의 위반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사과하고 2025년 증원부터 원점에서 논의한다고 해야 한다"면서 "이런 조치가 없으면 합의해도 나중에 또 무시할텐데 협의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고치는 신뢰 회복"이라며 "그게 없다면 의료계가 협의체에 들어갔다가 또 농락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환규 전(前)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자신의 SNS에 "대통령실 의료농단과 정부 횡포로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의사들이 2026년 증원 원점 재검토에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냐"고 반문하면서 "2025년 증원 원점 재검토를 깔고 시작해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野 박주민 의원 "2025년 정원도 조정할 필요있어"
與 안철수 의원 "2026년 증원 유예돼도 전공의‧의대생 안 돌아와"
이 같은 의료계 분위기 속에 여야 양당에서도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검토해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6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아주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이 상황이면 2025년도 정원도 손을 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당장 의료대란의 위험성이 굉장히 크고 국민들이 받고 있는 피해가 굉장히 크다"면서 "또 대부분 의대 정원이 급격하게 늘면서 제대로 교육을 못 할 것이라고 교수들이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 해당 대학 학생들은 졸업해도 의사시험을 못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 정원에 대해 당내에 얘기는 해볼 텐데 이재명 대표도 언급했었지만 (2025년 정원 조정 시) 향후 혼란에 대한 걱정도 있다"면서 "정부도 자존심, 체면 따질 때가 아니고 유연한 태도를 취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앞서 한동훈 대표가 지난달 말 대통령실에 2026년 의대 증원 유예안을 제안했을 때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한 바 있다.
안 의원은 당시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2026년 증원이 아니라 2025년 증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한 대표의 유예안을 받아들여도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본인들이 요구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안 돌아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