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명 배구선수가 ‘뇌전증’을 호소하며 군 입대를 연기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병역을 면하거나 연기하기 위한 사유로 활용되는 질환이 다양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주로 천식과 같은 기관지성 질환이나 불안정성대관절(십자인대 파열), 허리디스크 등이 병역비리 사유로 등장했지만, 최근 의료기술 발전 등으로 군 입대 전 신체검사가 엄격해지면서 다양한 질환이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뇌전증은 주로 뇌파검사와 MRI 검사 등을 통해 진단한다. 하지만 검사 결과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환자의 임상 증상이나 병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뇌전증 증상이 심각한 경우는 병역면제 사유로 인정된다. 하지만 프로선수로 경기에 참여할 정도라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방증으로 군 생활 역시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의료 전문가들 입장이다.
28일 스포츠계 등에 따르면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 J 선수는 병역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J씨는 20대 초반 병역 신체검사에서는 1등급을 받았다. 구단이 관리하는 기록에서 또한 2020년까지 현역 입대인 3급이 나왔다. 하지만 재검으로 2022년 2월쯤 4등급 판정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J씨는 2020년 12월쯤 경기 후 한 차례 쓰러진 후, 이듬해 1월 병원 검사 후 뇌전증 증세가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구단에 전하며 병역 신체검사 재검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외에도 축구를 포함한 다수의 프로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병역 비리 의혹을 수사 중으로 대상만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뇌전증을 호소하며 병역을 면제받거나 판정 등급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뇌전증, 뇌파이상 없으면 환자 증상‧병력 의존 진단 多"
한 번에 6급 병역 면제를 받거나 여러 경로로 등급을 조작해 4급 보충역이나 5급 전시근로역으로 판정받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전증은 발작을 유발하는 원인이 없음에도 반복적으로 발작이 발생해 만성화된 병으로, 흔히 ‘간질’으로 알려진 신경계 질환이다.
수도권의 한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뇌신경 일부분이 과흥분 상태로 뇌 전체가 흥분하면서 전신경련 및 발작이 일어나는 병으로 보통은 약으로 조절한다”며 “난치성간질의 경우에는 약을 5가지 이상 써도 조절이 어려워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직접 경기를 뛰는 프로선수들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약 조절이 된다는 뜻”이라며 “간질이 있어도 약으로 조절되면 충분히 격한 운동이나 군대 생활도 견딜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뇌전증은 진단을 위해 뇌파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시행하는데 이상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 임상적인 경련 히스토리 등을 기준으로 진단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진단받으면 최소 3년 이상 항경련제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굉장히 신중히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등은 뇌전증 진단 수법으로 병역 면탈을 도운 브로커를 적발해 수사 중이다.
직업군인 출신인 브로커 A씨는 서울 강남구에 병역 문제 관련 사무소를 차려 면제 방법을 알려주고는 한 사람당 수천만 원씩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신체검사, 재검사, 이의제기, 현역 복무 부적합심사, 복무 부적합, 연기 전문 상담'을 내걸고 활발히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