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물결이 의료계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하나씩, 그러면서도 급속도로 병원의 모습을 바꿔나가고 있다. 병원 풍경의 변화는 곧 환자 경험의 새로운 단계로 이어졌다. 주요 의료기관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됐고, 그런 변화 과정에서 고품질 의료서비스를 유지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가 됐다. 이 지점에서 전문가들이 다시 주목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이다. 인적 자원의 효율적이고 적절한 활용은 디지털 시대 의료기관 역량 관리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패러다임이 일어나는 시점, 다음 세대 의료기관 역량관리를 위해 병원이 가야할 길을 데일리메디가 조망했다.
[편집자주]
① 스마트병원, 여전히 핵심은 '기술' 아닌 '사람'
② 변화무쌍한 미래, 의료서비스 질 어떻게 높이나
③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진정한 의료서비스 혁신
정교해진 ‘스마트병원’, 일상 속으로 성큼
‘스마트병원’이란 단어가 등장한지 어언 10년이다. ‘미래병원’, ‘디지털 병원’, ‘첨단기술이 적용된 병원’ 등 막연한 이미지였던 스마트병원은 어느덧 의료현장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스마트병원 구축에 나선 병원계는 곧 고민에 빠졌다. 기존 스마트병원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인 ‘디지털병원’과의 차별화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때문이다.
단순히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기존 의료기관이 계속해왔던 ‘시설 개선’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디지털병원과 스마트병원의 차이를 확실히 한다.
그러면서 핵심 키워드로 ‘초연결’을 제시했다.
‘초연결’이란 병원 안과 밖, 의료진과 환자가 상호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받는 환자경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게 목표다.
디지털 인프라는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적 수단이라 볼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스마트병원을 ‘병원 내‧외부 연결성을 확보하고, 내부 프로세스의 자동화와 최적화를 통해 환자 치료효과를 개선하고 경험을 증진하는 병원’이라 정의한다.
단순한 기술 적용 외에 병원이란 공간에 요구되는 사회문화적 역할이 더해진 개념이다.
권순만 진흥원장은 “스마트병원은 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끄는 매개체이자 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보건산업의 D.N.A(Data, Network, AI) 혁신을 견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물론 정부도 스마트병원에 거는 기대가 대단한 모습이다.
政, 2025년까지 360억 이상 투입
스마트병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실제 정책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멀기만 했던 ‘스마트병원’의 개념과 모습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면서 과감한 투자에 팔을 걷어 붙였다.
우수한 우리나라 의료‧IT 인프라를 십분 활용해 국내는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스마트병원 선도모형 개발 사업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총 18개 병원을 선정해 민간부담을 포함해 10억원부터 최대 20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지난해 3차 추경에서 1차 사업에 대해 6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의료데이터 표준화, 의료AI 실증화 사업 등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업까지 고려하면 지원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병원과 우수한 ICT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 스마트병원 시장을 선도해 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스마트병원 선도모델이 다른 의료기관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요구하는 스마트병원의 모습은 각 시기의 사회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스마트병원 선도모형 개발 사업은 코로나19 시국에 따라 ‘감염병 대응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과제’로 각 의료기관이 자유롭게 사업을 제안했다.
심사결과 ▲분당서울대병원(원격중환자실) ▲국민건강보험일산병원(스마트감염관리) ▲용인세브란스병원(스마트감염관리) ▲서울성모병원(병원 내 자원관리) ▲계명대 동산의료원(병원 내 자원관리) 등 5개 의료기관이 3개 분야에서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어 지난 5월에는 2021년 사업자 선정이 이뤄졌다. 스마트병원의 중요한 요소인 ‘환자 체감’을 주제로 한 3개 분야에서 마찬가지로 5개 의료기관이 뽑혔다.
▲강원대병원(병원 내 환자 안전관리) ▲아주대병원(병원 내 환자 안전관리) ▲국립암센터(스마트특수병동) ▲한림대성심병원(지능형 워크플로우) ▲삼성서울병원(지능형 워크플로우) 등이다.
스마트해진 병원들 “음성으로 수술기록지 작성”
정부의 첫 지원사업인 ‘스마트병원 선도모형 개발 사업’은 지난 7월 첫 성과보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선 현재 우리나라 스마트병원이 어디까지 왔는지 엿볼 수 있었다. 사업자로 선정된 각 병원들은 그야말로 ‘미래병원’의 모습을 보여줬다.
먼저 분당서울대병원은 원격 중환자실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협진 시스템(e-ICU) 구축 사례를 소개했다.
원내 중환자실 8개소를 연결한 ‘통합관제센터’를 구축, 의료진이 각 중환자실의 통계 정보와 중환자 생체징후 등을 모니터링하며 협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건보공단 일산병원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기반 지역 감염병환자 관리(위험도예측, 환자분류, 진단보조) 시스템 구축 사례를 선보였다.
지역단위로 생체징후를 원격 모니터링 해 고위험군 환자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졌다. 원격 모니터링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활용됐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입원환자·직원뿐만 아니라 외래환자·방문자 등도 감염 추적이 가능한 스마트폰 기반 출입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원내 추가 감염을 최소화하는데 역할했다.
또 최근에는 업무 자동화 기술인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이하 RPA) 솔루션을 구축했다.
RPA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격리병상 자동 배정 시스템에 사용되기도 했다. 직원들의 업무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신속·정확한 일처리가 가능해졌다
서울성모병원은 무인안내기(키오스크), 모바일 QR 등의 사전문진과 스피드게이트를 연계하는 스마트 출입통제시스템 도입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2년 전 자체 개발한 ‘Voice EMR’도 대표적인 디지털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도 높은 정확도로 기록이 가능하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생체인증(지정맥) 허가시스템을 탑재한 자율주행 로봇을 도입했다. 항암제·마약류 등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배송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수술실 의료기구 위치 추적 및 상태정보를 실시간 모니터링, ‘미래형 자원관리’ 모델을 제시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 외에 민간 차원에서도 신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하다. 서울성모병원과 은평성모병원의 '전자간호기록(ENR, Electronic Nursing Recor) 시범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은평성모병원이 처음으로 공개한 ENR 시스템은 간호사가 환자에게 수술 일정을 안내함과 동시에 해당 내용을 전자차트에 기록할 수 있도록 한다. 실시간 기록을 통해 정확도를 높이고 사후 정리 등 추가 업무시간이 줄어들었다.
은평성모병원 전자의무기록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병국 교수는 "의료진이 의무기록지를 작성하는데 업무시간 절반 가량을 사용한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병원에서는 의무기록지를 작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면서 "AI 음성인식 기술이 의료진 피로도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외래뿐만 아니라 수술이나 검사, 처치, 회진, 응급상황 등 실시간으로 기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AI 음성인식 기술이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신기술은 병원 업무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시기와 장소에 적절한 기술도입을 통해 기존 인력의 업무경감을 유도할 수 있었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만큼 환자경험 만족도가 증가한 것은 당연했다.
해당 사업에 참여한 병원들은 '의료서비스 제공 비용이 절감되고 운영 효율성도 크게 증가했다'고 입을 모았다.
보산연은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병원은 임상우수성, 환자경험개선, 운영효율성을 촉진하는 핵심요소로 제시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임상현장에서의 파급력은 이같은 예측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기술발전 시간문제, 다음 단계는 ‘업무 표준화’
‘IT·의료강국’답게 국내 병원들의 디지털 전환은 놀랄 만큼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첨단 기술들이 각 병원에 도입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제 전문가들의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화려한 기술 발전이 병원에 정말로 효용을 가져오기 위해선 근본적인 업무시스템 변화가 필수적이란 설명이다.
‘어떻게 병원 경쟁력을 강화하고, 의료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스마트병원을 도입하는 근본적인 목적에 충실하기 위한 현장의 가열찬 고민이 시작됐다.
실제 전문가들은 신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탁월한 시스템이라도 효율적인 활용은 또 다른 문제란 얘기다.
인건비 등 비용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하는 실무진도 비슷한 맥락에서 어려움을 토로한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전문 인력을 충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기존 인력의 퍼포먼스를 최대한 끌어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경직된 병원의 업무 프로세스는 이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진흥원은 보고서를 통해 “병원마다 상이한 의사결정 구조와 행정처리 과정이 있다”며 “원내 규정까지 준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급속한 변화에 대처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은 여러 직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업무가 유기적이면서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 복합적인 시스템”이라고 특징을 분석했다.
새로운 시스템이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고도화된 업무재편, 업무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연구팀의 진단이다.
스마트병원 확산을 위한 표준화, 그 출발점은 어디?
하지만 업무 표준화 작업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주요 대형병원들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될 정도다.
김재학 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센터 소장은 최근 감염관리 일환으로 원내 진료구역·일반구역을 분리하고 스피드게이트를 도입하는데 있어 “여러 부서의 직원이 연관된 만큼 업무분장을 조율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됐다”고 전했다.
10개가 넘는 부서의 요청사항을 고려하는 동시에 적재적소에 업무를 배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스피드게이트는 서울성모병원이 스마트병원 선도모형 사업에서 소개한 디지털화의 대표사례다.
의료기관 HR 전문가인 김민정 헬스와이즈 대표 역시 “기술적 인프라는 구축됐지만 이를 활용하는 인력의 업무 표준화가 뒷받침되지 못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람이 하는 일을 기술이 대신하는 과정에서는 업무 표준화가 필수”라며 “이를 위해 직무를 관리하는 체계가 지금과 같은 의료기관 인증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체계적인 방법론을 기반으로 분류되고, 전문화 된 차세대 직무기반의 인사관리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의료기관의 업무관리 시스템 고도화 방안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 주도의 직무 분석을 기반으로 한 직무 표준화(NCS)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과정 개발이 상당부분 진행됐으나 의료계는 활용이 미비한 상태이다.
김재학 교수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을 기술이 대신하는 과정에서는 적절한 표준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각 병원은 혁신 기술을 도입 시 이러한 부분에 대해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기술과 관련한 업무를 분배할 때 의료기관이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직원에게 의지를 함양하게 할 수 있는 지”라며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에 대한 체계적인 지도는 물론, 이러한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동기부여도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곁에 다가온 스마트병원 시대, 전문가들은 인력운용방안의 중요성에 입을 모았다. 특히 업무 표준화에 대한 고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콕 집어 말했다.
첨단기술을 의료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강조될 거란 전망이다. 이에 병원들 앞에 놓인 현실적인 과제는 ‘효율적인 인력 운용법’으로 정리된다.
기존 의료기관 HR 관리법에서 벗어난 ‘스마트 병원 시대 HR 관리방안’에 새롭게 대두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