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물결이 의료계에도 거세게 일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하나씩, 그러면서도 급속도로 병원 모습을 바꿔나가고 있다. 병원환경 변화는 곧 환자 경험의 새로운 단계로 이어졌다. 주요 의료기관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됐고, 그런 변화 과정에서 고품질 의료서비스를 유지하는 게 새로운 과제가 됐다. 이 지점에서 전문가들이 다시 주목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이다. 인적 자원의 효율적이고 적절한 활용은 디지털 시대 의료기관 역량 관리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패러다임이 일어나는 시점, 다음 세대 의료기관 역량관리를 위해 병원이 가야할 길을 데일리메디가 조망했다. [편집자주]
① 스마트병원, 여전히 핵심은 '기술' 아닌 '사람'
② 변화무쌍한 미래, 의료서비스 질 어떻게 높이나
③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진정한 의료서비스 혁신
④ MZ세대와 직장으로서의 병원, 공존은 가능한가
⑤ 병원계 디지털화 바람···환자편의·업무효율 개선 효과
‘DT(Digital Transformation)’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단순한 정보 디지털화인 ‘전산화’, 업무를 자동화하는 ‘디지털화’와는 다르다. 업무자체를 디지털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이 4차산업혁명과 DT를 빠르게 앞당겨 산업계 전반에서 DT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의료기관 또한 이러한 흐름에 합류 중이다.
아직까지는 ‘스마트병원’ 도약을 꿈꾸는 대형병원 위주로 시도가 이뤄지고 있긴 하나 일선 의료진들은 의료기관 DT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601명의 의사·간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디지털헬스케어 수요·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8%가 “디지털헬스케어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디지털헬스케어를 통해 ▲환자 편리성(27.5%) ▲업무효율(18.5%) ▲임상적 판단 신뢰도·정확도(12.8%) 등의 향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환자 접근성 개선·업무 효율 증대···병원계 스며든 ‘디지털’
‘자동화’는 직원의 단순·반복업무를 줄여 핵심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의료기관에서 적용될 경우 여기에 더해 환자의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최근 스마트병원을 지향하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들이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해 ‘진료비 하이패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진료비 하이패스는 환자·보호자가 병원 창구를 방문하지 않고도 진료·검사 후 귀가하면 진료비가 자동 결제되는 이른바 수납 간소화 서비스다.
한양대구리병원·서울대병원·해운대백병원·시화병원··중앙보훈병원 등이 이를 도입했다. 특히 국가유공자 등 고령의 환자가 주로 내원하는 중앙보훈병원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곳은 금년 1월 진료비하이패스를 도입해 약 6개월 만에 등록이 5000건, 결제 1만2000건을 돌파했다. 진료비 수납 뿐 아니라 제증명 발급 및 실손보험 청구도 병원 자체 모바일 앱을 통해 가능해 환자 편의가 대폭 개선됐다.
세브란스병원은 ‘마이세브란스’ 앱을 통해 국내 최초 실손보험 청구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서울대병원도 레몬헬스케어와 협업해 지난해 5월부터 모바일 제증명 발급 서비스를 개시했다.
서울대병원도 지난해 7월부터 자체 앱을 통해 실손보험 청구도 가능토록 했다.
환자 전원·회송 절차도 보다 간소해질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진료협력센터는 의료기관 전용슬롯을 운영해 교수들 협조로 가장 빠른 일정으로 15분 심층진료를 연계하고 있다.
정부 사업 뿐 아니라 자체 진료정부교류시스템을 운영해 전원된 의료기관에서 서울대병원 전자의무기록(EMR)과 동일하게 환자기록 조회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주대병원 및 한국병원약사회에 따르면 대부분 환자 수에 비해 병원약사수가 극히 적다보니 인력 재배치가 상당히 요구된다.
이에 원내 조제업무에 자동화를 도입했을 경우 조제시간 및 약품관리 오류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키오스크 겸 안내 역할을 하는 로봇도 근래들어 의료기관 입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수술에 쓰이는 신형 로봇은 의료기관이 수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도입하는 분위기다.
최근 각광받는 VR·메타버스 등 신기술도 의료기관 홍보 및 의료진 교육 등이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경희의료원 VR 역사전시관·중앙대광명병원 가상병원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경희의료원은 자체 기획·제작한 게더타운 플랫폼 내 '가상 야외건강상담실:경희 한슬림'을 구축해 환자 맞춤 상담에 활용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중앙보훈병원 등도VR 교육을 통해 심폐소생술 등 신규 직원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수술 내비게이션용 AR 등 진료행위와 밀접한 메타버스 기술이 등장하면서 나아가 원격협진 및 분원 간 연결점 구축에도 활용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기술 보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준환 서울아산병원 교수(시뮬레이션센터 디지털헬스 담당)는 “의료진이 부족한 나라에서 원격협진·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지는 것”이라 평가하면서도 “코로나19 유행 동안 메타버스로 다학제 진료를 본 적이 있는데 너무 느려 직접 가는 게 의료진 후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AI 채용·빅데이터 연구···병원 경영·브랜드 제고에 디지털 활용
그렇다면 환자와 직원 편의를 높이는 것 외에 의료기관 경영 및 브랜드 제고를 위해서도 디지털 기술이 활용될 수 있을까?
의료기관들은 경영 부문 중 특히 채용 부문에서 디지털 기술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AI 채용이 그 예인데, 서류전형 절차에서 오류를 줄이고 객관화된 평가·검증이 가능해 면접관의 주관·특수관계 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산업계 전반에서는 인공지능(AI) 채용을 도입하고 있었지만 전문성·서비스·윤리의식 등 특히 의료진의 경우 요구되는 특수성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AI 채용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료기관 대형화와 함께 지원자가 늘어났고, 투명한 채용의 필요성을 느낀 의료기관들은 AI 채용을 들여오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인천성모병원·강원대병원·고신대복음병원, 한양대 구리병원 등이 그 예다.
인천성모병원 관계자는 “현재 단순 지원직을 제외한 모든 직군을 대상으로 AI 역량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지원자의 성과역량 및 성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반영, 우수한 인재 채용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연구력’도 대학병원 등 의료기관 브랜드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실제 많은 의료기관들이 진료로 쌓은 지식을 활용해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사업화에 적용하는 ‘연구중심병원’을 표방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하반기 국가암데이터센터로 지정된 국립암센터는 AI·빅데이터를 활용해 암 데이터 구축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내원객 약 50만명 데이터 등 다양한 연구자원을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를 지닌다.
최근 센터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과 AI-Hub AI 학습용 암데이터 공동활용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AI 학습용 데이터 활용 네트워크를 조성키로 했다.
개인자리 없앤 인천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구성원 역량강화 고민해야”
인천·부천 세종병원은 국내에서 디지털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의료기관으로 꼽힌다.
70년생 젊은 리더인 박진식 인천세종병원 이사장은 첨단 IT기술을 의료서비스와 병원운영에 접목시키는데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계 화두인 디지털 전환에 대해 박 이사장은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따라 알맞은 전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정보의 디지털화’는 일선 의료현장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원무기록 등을 수기가 아닌 전자문서로 작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IT기기가 대체하는 ‘업무의 디지털화’도 병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병상 배정을 하거나, 로봇을 이용해 약제를 운반하는 일이 그 예다.
세종병원 또한 ‘투트랙’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뤄나가고 있다. 먼저 ‘업무의 디지털화’와 관련해 최근 원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관리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이를 위해 행정 직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 워크’라는 세종병원만의 독창적인 업무 환경을 도입했다. 직원 개인 자리와 PC를 없애고 모든 작업을 클라우드 서버에서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스마트 워크를 도입한 후로 원내정보 관리 효율이 크게 늘었다. 모든 업무가 클라우드 환경에서 이뤄짐에 따라 직원끼리 자료를 요청하는데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처음에는 새로운 업무 환경을 낯설어하는 직원이 많았기에 효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며 “개인 자리·PC를 없애는 것도 부분적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하면서 적응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세종병원은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역량을 제고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가까운 시기 AI와 로봇 등을 원무시스템에 활용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실제 이러한 기술을 다루기 위한 ‘코딩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박 이사장은 “디지털 전환의 기반은 기술을 사용하는 직원”이라며 “사용자인 직원들이 기술과 그 쓰임새를 이해했을 때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의료기관 디지털 전환을 모색하는 운영자들은 새로운 기술 도입을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고, 나아가 이에 필요한 구성원들의 역량강화 방안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직원역량강화, 직무분석 및 역량 측정부터”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을 모색하는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는 구성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어떻게 첫 단추를 끼워야 할까.
병원 전문 컨설팅 기업 헬스와이즈 김민정 대표는 “각 병원이 어떤 전환을 통한 서비스를 도입하는지를 우선 정의하고 이에 따른 필요 역량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어 “디지털 전환은 기존의 업무 방식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변경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조직 내 직무 정의를 통한 직무역량으로는 부족하다”며 “새로운 직무를 정의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에 인사(HR)업무도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조직 역량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김 대표는 “직원들이 수행해야 할 적정업무와 적정시간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의료 분야처럼 개인 역량을 기반으로 일하는 전문 인력은 체계적인 직무 관리체계 및 직무 기반 인사관리가 향후 병원들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