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지난 8월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故 고원중 교수(前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에 대해 권오정 삼성서울병원장이 당시 고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고 리더십이 부족했던 점을 사과했다.
유가족 뜻에 따라 이날 추모식을 가진 병원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고원중 연구기금'을 제정했다. 유가족 대표인 아들 성민 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아버지를 떠밀었던 손들이 저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16일 오후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히포크라테스홀에서는 '故 고원중 교수 추모식'이 열렸다.
권오정 삼성서울병원장은 "고인은 삼성서울병원에서 18년 이상 일하며 결핵과 비결핵항상균 분야에서 병원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정착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이를 위해 많은 연구와 진료를 하다보니 몸에 이상이 생겨 입원까지 했다"며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요구를 했는데, 병원장으로서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어 "고인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선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했는데, 이게 여의치 않으니 몸과 마음에 무리가 와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 같다"며 "고원중 교수님과 유족분들, 또 고인을 아끼고 사랑했던 동료 교수들에게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호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장은 "만성 감염 폐질환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고원중 교수님은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환자 코호트를 만들어내는 등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며 "이러한 연구를 하느라 밤을 새어 논문을 쓰다가 허리를 다쳐 몇 번이나 입원을 하기도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호흡기내과 일원으로서 고인을 도와주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다"며 "분과장으로서, 선배 교수로서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바쁜 일상에서 쫓기는 후배 교수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점에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가족 측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한 아들 고성민씨는 병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아버지는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본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하면서도 상대방 의견을 묻고 자신의 의견을 전하던 다정한 분이셨다"며 "그러나 정작 본인의 직장에선 모난 돌로 비춰졌고, 병원 이름보다는 자신의 연구를 위하고자 했던 당신은 지난 겨울 사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하신 날은 바로 삼성서울병원을 떠나기 위한 송별회가 있었던 바로 그날"이라며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송별회도 무사히 잘 마쳤고 사인에 대해선 짐작가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고 유가족 이야기는 배제된 언론보도만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진료과에서 마찰을 겪었지만, 병원 측은 이처럼 이러한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고 이번 추모식과 기금 조성도 온전히 저만의 추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지난 1년간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인하고 '왜 더 많이 연락드리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24시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며 "남은 가족들은 너무나 무거운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나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병원은 이날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고원중 연구기금'을 제정했다. 결핵기금과 비결핵상산균 두 분야에서 논문 수상작을 선정한다. 시상금은 1000만원이며, 병원장과 부원장 그리고 유족이 논문을 검토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편, 故 고원중 교수는 비결핵항산균 폐질환 연구 대가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국립환경연구원 및 보건산업진흥원 공보의를 거쳐 2001년 5월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임상강사를 지냈다. 이후 2015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는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분과장을 역임했다.
생전 180여 편의 SCI(E)급 논문을 게재한 그는 130여 편의 SCI(E)급 논문 공저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가장 최근인 2018년 대한의학회로부터 우수심사자 표창을 받았으며, 같은 해 결핵퇴치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