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권역·지역 책임의료기관 협력체계가 더 이상 한 대형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인 동맹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4월 3일 오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은 서울권역 공공보건의료협력체계 구축사업 발전방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현재 서울시의 권역책임의료기관은 서울대병원, 지역책임의료기관은 서울의료원(동북권)·서울서남병원(서남권)·서울적십자병원(서북권)·서울시보라매병원(동남권) 등이 지정돼 있다.
이날 장원모 보라매병원 공공의료정책담당 교수는 "시설 규모에 따른 권역·책임의료기관 역할에 대한 재고(再考)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 교수는 “1900년대 초반 등 인프라가 없을 때 시도한 접근 방법인데 서울은 민간 기관까지 합치면 인프라가 충분하다”며 “그럼에도 위계적 질서에 따른 위기분담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특히 팬데믹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역·지역 등 이러한 접근법은 응급 영역에서 오랫동안 시도했지만 일부 실패했다는 의견이 있다”며 “책임의료 영역도 전통적 방법보다 기관 간 유연한 관계 정립 등 새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진용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수직적이었던 예전 분위기에 비해 동맹 분위기로 바뀌며 진일보했다고 본다”면서 “책임의료기관들이 잘 하는 요리를 해오고, 권역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 본원과 서울시가 상을 차려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비유했다.
이어 “우리가 서울 인구 1000만명을 모두 커버할 수 없다”면서도 “각자가 잘하는 영역을 하되 응급·정신·퇴원 등 필수의료라는 큰 틀에서 인력·재화를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윤철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장도 “수직·위계적 질서를 통한 협력체계 시대는 지나갔다”며 “위에서부터 지침을 내려 시행하는 기조는 더 이상 맞지 않다고 본다. 내용도 협력해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 정체성 모호·권역별 미충족 수요 달라 조정 필요
홍기정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 총괄담당 교수는 그간 권역책임의료기관 사업을 운영해오며 느낀 보완점을 소개했다. 우선 아직까지 사업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홍 교수는 “공공의료사업을 많이 하는 병원들이 동맹을 맺어 사업을 하는 것인지, 공공의료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인지, 서울대병원과 4개 병원이 같이 사업하는 것인지 등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 전국 권역별로 미충족 필수의료가 다른데, 이를 일괄적으로 통일된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홍 교수는 “경북이 가진 필수의료 고민과 서울의 경우는 완전 다르다”며 “같은 필수의료 분야라 해도 권역별로 조금 더 투자하고 싶을 수 있는데, 균등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원모 교수도 “사업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인데 고식적인 기존 보건사업 길을 밟을 것인지 풀지 못한 숙제를 풀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책임의료기관이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파고들 수 있는 방식도 고민해보자”고 조언했다.
공공의료 의미가 기존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사업에서 점차 사업이 공공성을 띠는 것으로 바뀜에 따라 민간의료기관과의 연계도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고광필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본부 공공의료담당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자체는 대부분의 민간의료기관이 주도하고 있어 공공의료기관끼리 의료협력체계를 적용하고 커버하는 데 제한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 확대”라며 “공공의료사업이 적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세워야 하고, 수가 정책 등이 동반돼야 가능할 것 같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