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팬데믹이 겨우 잦아드나 싶더니 때 아닌 전쟁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저서 ‘휴먼카인드’에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인 놀라운 이타심으로 인류의 희망을 역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가가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행하는 일은 모두에게 큰 불행을 초래한다.
공공성은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을 말하며 사유성 혹은 사익성에 반대되는 말이다.
정부는 국민이 낸 세금과 위임한 권한으로 최상의 공공성을 전제로 한 정책을 펼칠 의무가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필수요소인 보건의료는 국가의 공공적인 관리와 강화가 필요하다.
미국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독점하다시피 하고도 엄청난 희생을 막지 못한 이유는 의료 접근성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 비공공적 의료체계임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는 적은 공적 부담과 낮은 보장률, 행위별 수가에 기인한 과잉진료,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등 의료공공성을 낮추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국가적 감염병 재난에도 정부가 제대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한 이유는 수와 역량이 부족한 공공병원에 더해, 분절적이고 비효율적인 거버넌스 구조 때문이었다.
작고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립중앙의료원에 수천억원을 기탁하면서 메르스 사태 이후 계획만 세우고 진행하지 못하던 국가중앙감염병병원 건립사업이 드디어 탄력을 받게 됐다.
그런데, 최근 모 중앙지에 이 사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글이 실렸다.
500병상도 채 못 되는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국립중앙의료원이 국가 감염병중앙병원을 운영할 수 있겠냐며 이를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감염병 재난을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정부를 힐난하고 국가공공의료의 컨트롤타워인 국립중앙의료원조차 동네병원 수준으로 만들어 온 정부를 질책하는 내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대안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교육부 산하의서울대학교병원은 법률상 학생의 임상교육, 전공의 수련과 요원의 훈련, 의학 관련 연구가 주된 사업이고 진료사업, 공공보건의료사업과 그 밖에 국민보건 향상에 필요한 사업은 후순위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정책 수립이나 보건의료기관이나 방역조직을 총괄하는 권한은 없다.
반면 국립중앙의료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중앙병원으로서 대학병원과 명백히 다른 책무를 갖는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임상진료지침의 개발보급, 노인성질환의 예방관리, 국가가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질병, 감염병 등 재난으로 인한 진료, 예방과 관리 등 공공보건의료에 관해 정책 개발·기획 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교육과 연구가 주된 임무인 대학병원보다 국가공공의료의 중심병원이 병원으로서의 역량이 형편없다는 비아냥을 들은 정부가 매우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새 정부에 공공병원 거버넌스 체계 정비를 당부한다.
교육부 산하 의과대학은 좋은 학생선발과 교육을 책임지고, 대학병원은 보건복지부 책임 아래 중증 난치질환의 연구·치료에 집중하면서 지역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 우수한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권역책임의료기관과 교육수련병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의 공공병원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국립중앙의료원, 주민에게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공공병원과 삼박자로 어우러져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를 발전시킬 역할을 하도록 만들자.
새로 지어질 국립중앙의료원에 들어설 중앙감염병병원의 큰 역할을 기대한다.
겨우 50여개에 불과한 공공병원들조차 감염병 재난에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원인은 분절화하고 비효율적으로 구성된 공공병원 운영체계에 있다.
코로나19의 맹위가 사그라지는 지금, 때마침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는 그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공공병원 거버넌스 구조를 일관성 있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재편하기를 바란다.
이런 한 걸음이 거액을 기부하신 분의 뜻을 살리고 또 닥쳐올 보건의료 재난에 짜임새 있게 대처할 공공보건의료의 튼튼한 기둥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