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10월 21일 열린 대한예방의학회 학술대회 메인 회의를 요약하면 ‘K-방역의 아쉬운 이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방역정책, 현장에서는 또 다른 고충을 느꼈다는 것이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칭찬하더라도, 아쉬운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위드 코로나를 대비한 새로운 방역정책 수립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21일 대구에서 열린 ‘2021년 73회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의 첫 발표는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의 ‘국내 코로나19 유행 대응 성과와 한계, 그리고 전망’이었다.
올해 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열렸다. 오프라인의 경우 좌장과 발표자를 비롯해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정 교수는 이날 “델타 변이로 인해 기초감염재생산수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백신 예방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며 “앞으로 ‘위드 코로나’로 갈 경우 전체 인구의 15~18%정도 감염되고 사망자는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감염된 사례가 적어 항체 양성률이 해외에 비해 떨어진다. 향후 위드 코로나 체제에서 잠재적 피해 가능성이 큰 편”이라고 진단했다.
“K-방역, 코로나19에 부적합하고 보건기관 배려 부재”
하지만 이후 발표에서는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제기됐다. 특히 이덕희 경북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K-방역 자체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K-방역은 코로나19 특성에 적합하지 못한 정책이었다. 방역정책을 일찍부터 바꿨어야 했다”며 “역학조사도 지금과 같은 방법은 비효율적이다. 백신접종 정책도 고위험군 및 희망자 중심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지금 같은 일률적인 접종 방식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치명성을 우리나라가 과대평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독감 사망률과 10배 강하다면서 위험성을 강조했지만, 독감 사망률도 연도에 따라 10배 차이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감염 치명률(IFR)을 0.27%로 추정한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경우 0.09%로 그 수치가 확 떨어진다”면서 “우리나라 치명률 통계는 1%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치명률이 높거나 못 발견한 경우가 많다는 뜻인데 후자로 본다. K-방역은 놓친 감염자도 많았고 치명률은 과대평가됐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또 우리나라의 역학조사 과정을 ‘구멍 뚫린 그물’로 총평했다. 무증상자 비율이 높고 전파 속도가 빠른 코로나19 특성상 비효율적이면서도 애꿎은 피해자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멍 뚫린 그물식 역학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적 희생양을 초래한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역학조사는 결국 국민들에게 코로나19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심었다. 이는 차후 위드 코로나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방역정책으로 인한 일반 시민사회 피해가 더 컸다.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을 나눈 ‘투 트랙’ 전략을 수행했어야 했다”며 “백신도 마찬가지다. 지금 거의 모든 시민들이 백신을 맞고 있는데, 단기간에 만든 백신의 장기 안전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이익은 과대평가하고 손해는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근상 전북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보건기관 관점에서 K-방역의 아쉬운 점을 짚었다. 정부 방역정책이 일선 보건기관에 대한 배려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정부는 의료진과 보건기관 부담을 덜기 위해 단계적 일상회복을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예를 들어 단계적 일상회복과 관련해 백신 패스 도입 이후 미접종자는 검사를 통해 음성확인서를 발급받는 식으로 백신패스를 대신한다고 하는데, 이미 여기에서 보건기관의 업무량은 더더욱 가중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위드 코로나 체제로 가면 검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보건기관은 현재로도 버거운 상황이다. 아직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확진자 증가시 역학조사 효율화 방안으로 역학조사 대상의 우선순위를 나누겠다고 하는데, 이를 과감하게 적용할 보건당국 관계자가 있겠는가”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재택치료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관리도 보건기관 몫”이라며 “또 자가격리 면제 여부를 놓고 혼선을 겪는 것도 일선 보건기관의 책임이다. 정부의 방역 정책은 보건기관에 대한 동료의식이 없다고 본다. 인력 지원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위드 코로나 이후 감염 증가 대비책 필요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방역정책에 관한 비판 외에도 위드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방역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촉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 정재훈 교수는 위드 코로나를 위한 단계적 일상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서킷 브레이커’를 꼽았다. 서킷 브레이커는 증권 용어로 주가 급락 시 거래를 긴급 정지해 피해를 완충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 교수는 “지금 당장 방역 완화시 우리나라에서 중증환자는 약 2만 명가량 나올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환경상 중증환자를 2000명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며 “유행 급증과 중환자 급증에는 2주 시차가 존재한다. 중증환자 급증 상황에서 긴급히 방역 수칙을 강화해 피해를 최소화 할 서킷 브레이커를 미리 논의하고 정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백신패스 도입도 마찬가지다. 미접종자를 배려해 한시적 적용 후 해제를 해야 한다”며 “또 지자체를 비롯해 보건소와 감염병 지원단, 예방의학자도 일상으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 인력증원과 업무환경 개선 없이는 단계적 일상회복은 요원하다”고 덧붙였다.
김영택 충남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방역정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로 의료적 방역과 비의료적 방역의 ‘고강도-단기간화’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백신 접종 기간이 길어지면 돌파 감염 등 문제는 더 커진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한계성이 있다”며 “위드 코로나 이후 백신 접종에서는 백신 접종량을 미리 확보한 뒤 많은 국민을 대상으로 일시에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 거리두기 등 비의료적 방역을 강화해야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최대한 고강도로 최단기간 시행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