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 기자] 의료계 반대가 극심한 상황이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현 심사제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석심사의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심평원은 분석심사 지침을 공개하며 심사체계 개편 방향성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근본적 문제는 심사 물량 및 의료 복잡성 증가로 현행 심사방식이 한계에 도달했고 이를 처리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심사대상 청구 건수는 지난 2000년 기관 설립 당시 4억건에서 지난해 15억건으로 375%가 증가했지만 심사인력은 510명에서 604명으로 늘어난 것이 전부다.
게다가 많은 심사물량이 짧은 법정기한(15일) 내 주로 사례별 적정성 심사로 처리되면서 심사의 전문성 및 일관성 문제 지속 제기되는 실정이다.
심평원은 내부 심사결정 구조에서 개방형·참여형 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을 분석심사로 규정하고 있다.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중심에서 의료현장 전문가가 심사주체로 지역단위 전문가심사위원회(Professional Review Committee, PRC), 전문분과심의위원회(Special Review Committee, SRC)를 통해 심사기반 개발 및 운영을 하겠다는 목표다.
여기에 진료비 심사제도 전반에 대한 효율적 운영을 위해 사회적 협의체(의료공급자, 가입자, 전문가, 정부 등이 함께 참여) 상시 운영해 일련의 민원을 처리한다는 계획도 세운 상태다.
심평원 측은 “심사 과정에서 의학적 타당성 및 의료의 질을 함께 확인 및 분석해 시의성 있는 중재 및 질 향상이 이루어지도록 추진할 것이다. 그간 적정성평가를 일부 영역에 실시하고 있으나 심사와 평가간 환류기전 미흡했다. 이를 극복하는 형태로 분석심사 활용된다”고 언급했다.
심사평가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비용자료 중심의 현행 청구명세서를 개편하고, 제출 양식·전산프로세스 등 통합·표준화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심평원은 8일 전주 그랜드 힐스턴 호텔에서 열린 한국보건행정학회 후기학술대회에서 ‘분석심사 현황과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오동관 심평원 부연구위원은 “의료인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분석심사다. 제한적 급여기준이 아닌 의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심사체계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관 차원에서 부적절한 비용을 지출을 방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 아니다. 지출된 비용 단위당 얻게되는 환자 의료가치 향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양(Volume)에서 가치(Value) 지향으로의 전환을 뜻한다”고 언급했다.
의료계, 달콤한 말 속에 숨겨진 독(毒) 우려
반면 의료계, 특히 대한의사협회 입장은 다르다.
의협 측은 “사실상 의료 질 평가라는 명목 하에 심사의 범위와 권한을 확대해 규격화된 진료를 강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비용을 통제하기 위함”이라고 분석심사를 규정했다.
이어 “의료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분석심사 시범사업도 재정절감을 위한 강력한 기전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심평의학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심사제도를 개선하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분석심사 핵심인력이 되는 PRC 및 SRC 워크숍이 열리는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집회를 열고 분석심사 선도사업을 즉각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의료계와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심사평가체계 개편과정에서 그간의 요구를 묵인하고 심평원은 워크숍을 개최하며 분석심사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규제와 억압의 진료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의학적 기준에 근거한 진료 자율성 보장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분석심사 틀만 고집할 것이 아니다. 의료계 요구를 수용해 심사·평가체계 개편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