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의사들은 아직까지 노동자라기보다 사용자로 인식된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고통받는 전문의들이 계속 보훈병원을 떠나고 있다. 우리 진료권 보장을 위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조직적으로 맞설 것이다.”
보훈병원 의사노조 초대 위원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보훈병원 의사노조 분회장이 된 주인숙 중앙보훈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이같이 결연한 심경을 피력했다.
노조는 지난 2018년 설립돼 현재 105명의 중앙보훈병원 전문의로 구성돼 있는데,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아닌 의사단체가 노동계 산하 조직으로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국내 첫 의사노조인 동남권원자력병원 의사노조 도움을 받아왔지만, 더 이상 독립 노조로서 활동하는 데 한계를 느껴 상급단체를 두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 분회장은 “의사들은 단체협상·임금협상 등 경험이 적다. 이에 전임자·지도자도 없이 공단 측과 소송만 해왔다”며 “사회필수영역을 담당하다 보니 집단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가입 당시 조합원들의 저항이 일부 있었지만 찬반투표 결과 78%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노조 설립 계기였던 실적 압박과 부당 인사 등은 현재 어느정도 해결됐지만 여전히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제 보훈병원 의사들이 처우 문제로 병원을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보훈병원에서는 금년 들어 11명의 전문의가 사직했고, 광주보훈병원에서도 근래 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부산보훈병원은 안과 전문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주 분회장은 “보훈병원 의사들은 임금이 비슷한 규모의 타 병원 대비 임금이 낮고 정년 또한 60세로 짧은 편”이라며 “이에 신규 전문의 뿐 아니라 장기근속 전문의도 대학병원·개원가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싸워 중앙병원에서 임금구조 등이 개선되면 지방병원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노조는 앞서 간호사·의료기사 등을 주축으로 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에도 가입을 시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주 분회장은 “직종별로 지향하는 바가 이질적이라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단협 경험 적어 조직적 대응 한계 느껴 민주노총 가입”
“임금 낮고 정년 짧은 보훈병원 의사들, 줄줄이 사직”
“병원 인사권·재정권 전부 보훈공단 관할···진료현장은 한숨만”
주 분회장은 지난 2001년부터 병원 경영을 맡아온 공단 측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매년 병원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공단 이사회에는 이사장을 비롯해 관리이사·기획이사 등 공단 측 인사로 구성돼 있고 심지어 외부전문가도 이사회 위원”이라며 “병원 측 구성원은 한명도 없다”고 전했다.
공단 측이 병원 내부 운영까지 모두 관리하고 있어 일선 진료현장과의 괴리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주 분회장은 이어 “병원장 권한인 내부 인사권 및 재정권을 모두 공단이 행사한다. 의료기기·약제 등도 공단이 결정해서 품질이 나쁜 것들도 마구 들여와 곤혹스러워하는 진료과도 많다”고 호소했다.
이에 “병원업무 이외 공단업무는 국가보훈처로 이관하고, 병원 운영 전반 업무는 병원이 주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공공병원은 특히 지방에서 환자가 계속 줄고 낮은 임금으로 의료인력 수급이 어려운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주 분회장은 기획재정부의 예산 통제를 받는 공공병원들의 인력수급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민주노총 산하 타 단체와도 연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는 “보훈병원은 고령 국가유공자분들을 위주로 진료하다보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몇 십년 후에는 이 인프라가 모두 사장된다”면서 “산과 등 필수의료 기능을 살려 공공병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탓에 적어도 보훈병원에서는 공공의대를 통한 의사 수급에 대해 낙관적인 사람이 꽤 많다”며 “공공의대를 만든다면 수도권에 설치하는 등 기존 보훈병원 인프라를 활용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