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지호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놓고 의료계와 보험업계 찬반 대립 구도가 되풀이됐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4명은 공동으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를 개최했다.
의료계는 의료기관이 서류전송 주체가 되는 것의 부당성,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불필요한 행정규제 조장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소비자의 보험금 청구절차 편의 개선과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실손의료보험 청구전산화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자로 나선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여러 개선안이 마련됐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청구 절차 복잡성과 까다로움은 해소되지 못했다"며 "실손의료보험 청구절차 간소화 문제는 거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성사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 교수는 "보험소비자에게 보험을 판매하고 소비자가 보험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의료행위가 이뤄졌으면 이에 대한 청구 및 처리, 지급까지의 과정은 투명하고 빠르고 편리해야 한다"며 "보험소비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용이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실손보험 청구 의무화 쟁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 이사는 "청구라는 건 소비자 개인이 행사해야 하는 행위다"며 "그런데 청구를 법으로 강제화한다면 단기간은 편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계는 이미 법 개정 없이도 청구간소화를 민간회사들과 협의해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자생적으로 성장한 핀테크 회사들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죽이는 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도입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정보 주체인 환자 동의를 전제로 전산 청구가 필요하다는 데 찬성하는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토론자로 나선 신영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미 법 개정 없이도 민간회사들과 협의해 청구 간소화를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미 '일부' 의료기관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전체'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보험사가 청구 전산화에 따른 중계기관 인프라 구축 및 운영비용, 프로그램 설치비용 등을 부담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오히려 제도 도입을 계기로 병원의 행정업무를 효율화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됨에도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보건의료단체는 청구 전산화법안이 민간 보험의 공보험 영역 침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는 "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관련 법안 개정은 궁극적으로 공보험 전산망을 활용한 민간보험 가입자의 정보 집적 및 이를 활용한 상품개발, 관리운영비 절감 목적에 방점을 뒀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계기관이 어디가 되든 청구 전산화가 이뤄지면 되지만, 민의 전문중계기관이 업무를 맡을 경우 공공기관인 심평원보다는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이 업체들 이익까지 감안한 비용이 발생할텐데 이는 보험사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중장기적으로는 보험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근거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 5건이 계류 중이다. 법안 모두 병원에서 발급하는 종이 서류를 전자 문서로 디지털화해 건강보험심의평가원 또는 전문 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로 전송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