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면 수준 미달의 논문도 실어주는 일명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의학계도 이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연구 실적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대학병원 교수들을 중심으로 약탈적 학술지 투고에 대한 유혹에 노출될 소지가 큰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약탈적 학술지는 연구자 개인의 연구윤리 위배는 물론 국제적 경쟁력 등 우리나라 연구환경 및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국내 의학 분야 석학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약탈적 학술지 근절을 위한 권고안을 마련하고 연구자와 학회, 관계기관 등에 주의를 당부했다.
의학한림원은 “최근 국내 일부 의학자들도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며 “이는 연구 윤리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연구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릇된 판단에 의한 약탈적 학술지 논문 투고는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시킴과 동시에 귀중한 연구 논문을 사장시키고 연구자의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도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내에서 연구비 지원, 승진, 채용 등의 연구력 평가가 수치화된 논문 성적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만큼 의학자들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약탈적 학술지 출판과 논문 투고 행위 자체가 불법이 아니고, 관련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사실상 근절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때문에 이 문제는 연구자, 연구기관, 학회, 정부 등이 지혜를 모아 연구자들이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의학한림원 역시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대한의학회, 한국연구재단 등 관계기관들과의 논의를 토대로 약탈적 학술지 근절을 위한 권고안을 마련했다.
우선 연구자에 대해서는 논문 투고시 평판이 명확하지 않은 학술지를 피하고, 투명한 절차와 신뢰성 있는 심사를 시행하는 학술지를 선택할 것을 당부했다.
대학 및 연구기관 학회의 경우 학생과 연구자를 대상으로 약탈적 학술지 문제점을 정기적으로 교육하고, 채용과 승진 심사에 해당 논문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연구비 지원사업 주관기관은 연구자의 약탈적 학술지 악용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연구성과 발표에서 해당 논문은 별도로 평가토록 주문했다.
의학한림원은 “약탈적 학술지는 논문의 질과 상관없이 인용 빈도에 따라 임용과 연구비 심사가 이뤄지는 관행을 악용한 것”이라며 “반드시 퇴출 돼야할 폐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직접 규제에 의한 근절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의학자, 학회, 기관 등이 함께 연구환경 개선을 통해 악습이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학계에 따르면 약탈적 학술지는 논문 실적이 절실한 연구자와 출판사의 장삿속이 맞아떨어져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1996년 2000개에 못 미치던 약탈적 학술지가 2018년에는 11만개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전체 학술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1%에서 3.7%로 늘었다.
일반 학술지는 논문 이용자에게 이용료를 받지만 약탈적 학술지는 연구자에게 게재료를 받는다.
논문 심사 허들을 대폭 낮춰주는 것에 더해 피인용 지수 부풀리기까지 제안하며 수 백만원의 논문 게재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