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전문의를 딴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데도 대학병원에 남지도 못하고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간판을 내걸고 개원할 수도 없다.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인력들이 있는데도 자꾸만 정책은 역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한 해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30여명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인력 활용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 선배의사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대한흉부외과의사회 김승진 회장[사진]은 12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개최된 연수강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체 흉부외과 전문의 중 절반은 대학병원에, 절반은 개원가에 분포돼 있지만 전공을 살리는 비율은 매우 낮을 정도로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생명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이어 "흉부외과는 확률적으로 '모 아니면 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반은 전공을 살리지만 나머지는 '간판'을 내세우지도 못 한다"며 "제발 생명과 직결된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읍소했다.
사실 일부 대학병원들에서는 흉부외과 전문의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그 자리를 메울 PA를 계속해서 뽑는다. 그 비율마저도 갈수록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현재 배출된 흉부외과 전문의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대학에서는 임시방편으로 PA가 투입되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김 회장은 "수 년 전 흉부외과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그나마 내놓은 방편이 수가 인상이었는데 이마저도 개원가들은 전혀 혜택을 보지 못했다"면서 "이대로는 제도 개선이 요원하다"고 꼬집었다.
김성철 총무이사도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병원들이 '땜질'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예컨대, PA를 채용해 인턴, 레지던트 수준으로 활용한다. 매우 위험하다"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남아있는 전문의로는 아마 대란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정도면 상당한 인력난에 허덕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김 총무이사는 "흉부외과 전문의 중에는 계약직이다 보니 응급실을 전전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어느 순간 나가라고 할 경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김승진 회장은 "응급의학과가 최근 회생 조짐을 보인 것도 확실하게 개원 후 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라면서 "흉부외과 전문의도 300병상 이상 요양병원에 의무적으로 배치되도록 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지부가 하루빨리 학회와 논의해서 현재 배출돼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런 가운데 학회는 프로포폴로 인한 마취사고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승진 회장은 "위내시경 등 프로포폴 사용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곳이 바로 외과다. 일부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해서 마치 초등학생 규제하듯이 마취 전문의만 마취를 하도록 한다면 그야말로 규제를 위한 규제"라고 쓴 소리를 던졌다.
그는 "1년에 위내시경 건수가 적어도 몇 만 케이스가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전문가들의 식견을 믿지 못하는 정책"이라면서 "위내시경을 개원가에서는 하지 말라는 뜻과도 같다"고 일갈했다.
이어 "성형외과에서 잇따라 터진 사망사고를 두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면 전체 회원들이 피해를 입는 격"이라면서 "복지부가 개원가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는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