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전 세계 의료·과학계를 흥분시킨 신형 '만능세포' 연구가 결국 일본판 황우석 사태로 귀결됐다.
혁신적인 만능세포로 평가받은 'STAP(자극야기 다능성 획득) 세포' 개발을 주도한 일본 이화학연구소(이하 연구소·고베 소재)는 14일 도쿄 도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TAP세포 관련 논문을 사실상 철회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 1월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은 STAP 세포 논문의 핵심을 이루는 복수의 화상 데이터(이미지)가 이번 연구를 주도한 연구소 발생·재생과학 종합연구센터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 연구주임의 3년전 박사학위 논문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회견에 자리한 연구소 발생·재생과학 종합연구센터의 다케이치 마사토시 센터장은 "논문 중에 신뢰성을 현저하게 해치는 잘못이 발견돼 논문의 형태를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오보카타 주임의 데이터 중복 사용이 고의적인 부정행위였는지에 대해서는 추가로 조사하기로 했다고 연구소는 부연했다.
이와 관련, 연구소의 가와이 마키 이사는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에서, 과학자로서의 윤리에 반하는 행동이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한 뒤 "잘못된 데이터를 사용하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은 과학자의 윤리에서 보면 상도를 벗어난 일이며, 연구 윤리 부족은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보카타 주임과 공동 연구자들은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 맞춰 지난 1월 말 네이처에 실은 STAP세포 논문을 철회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사죄의 뜻을 담은 문서를 발표했다. 오보카타 주임 등 연구소 소속 공동연구자 3명이 논문 철회에 동의했다.
논문 철회를 위해서는 미국인 연구자를 포함한 공동연구자 전원(14명)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논문이 공식 철회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연구를 주도한 연구자들이 철회할 뜻을 밝히면서 이번 연구 성과는 무효가 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아직 복수의 공동연구자들이 STAP 세포를 만든 것은 사실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다케이치 센터장은 STAP 세포의 진위 확인은 '제3자 검증'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노요리 료우지 연구소 이사장은 회견에서 "과학사회의 신뢰성을 흔들 수 있는 사태를 일으킨 데 대해 사죄한다"며 "논문 작성 과정에서 심각한 과오가 있었던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오보카타 주임 등 연구진이 쥐 실험을 통해 입증한 STAP 세포는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잠깐 담그는 자극만으로 어떤 세포로도 변할 수 있는 만능세포가 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생명과학 상식을 뒤집는 혁신적인 성과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STAP 세포는 그동안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받았던 유도만능줄기세포(iPS)에 비해 간단히,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는 데다 유전자를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암 발생 우려도 적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외부 연구자들이 STAP세포 논문의 화상 데이터가 부자연스럽다며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STAP 세포 연구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와카야마 데루히코(若山照彦) 야마나시(山梨)대학 교수가 지난 10일 "믿었던 연구 데이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STAP세포가 정말 생긴 것인지 여부에 확신이 없어졌다"며 논문 철회를 제안하면서 사태는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대형연구를 주도한 과학자치고는 어린, 30세의 여성이라는 점이 주목도를 높이며 일약 '과학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오보카타 주임은 날개없는 추락을 면치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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