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한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는 이런 선천 면역 반응을 무력화해 종종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킨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인간의 타고난 면역반응까지 무력화하는지를 아일랜드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터페론의 유도로 항바이러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러면 인터페론 경로의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지 않아, 바이러스 침입에 맞서는 선천 면역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블린 소재 트리니티 대학의 나이절 스티븐슨 바이러스 면역학 조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바이러스'(viruses)에 논문으로 실렸다.
14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번 연구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와 같은 계열인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SARS-CoV-1)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MERS-CoV)가 사용됐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신종 코로나 외에 사스, 메르스, 계절성 인간 코로나(HCoVs) 4종 등 모두 7종이 확인됐다. 여기서 계절성 인간 코로나바이러스는 흔히 말하는 감기 바이러스다.
이번 연구 결과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세계에 팬데믹(대유행)을 몰고 온 신종 코로나는 물론이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변이 코로나에도 효과적인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사스 바이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는 각각 2001년, 2012년에 유행했다. 두 바이러스 모두 전염력은 신종 코로나에 미치지 못하지만, 치명률(사스 10%, 메르스 40%)은 훨씬 높다.
스티븐슨 교수는 오래전부터 '트리니티 생의학 연구소'(TBSI)를 기반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해 왔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번에 사스 바이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가 공유하는 여러 종류의 교란 단백질을 찾아냈다. 이들 바이러스 단백질은 인체 면역계에서 인터페론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실제로 바이러스 단백질이 면역계에 미치는 충격은 엄청났다. 인터페론 경로 자극으로 활성화되는 세포 연쇄반응이 여기저기서 막혔고, 바이러스 입자 숙주세포 내 복제를 차단하는 수백 종의 단백질도 생성되지 못했다.
결국 코로나바이러스의 이런 단백질도 인간 면역계의 인터페론 경로에 맞서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스티븐슨 교수는 "바이러스도 인간의 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회피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봐야 한다"라면서 "사스와 메르스 두 바이러스는 면역계의 핵심 단백질이 활성화해 세포핵으로 진입하는 걸 막았다"라고 설명했다.
DNA가 보관된 세포핵에서 유전자 스위치가 제대로 켜지지 않으면 필요한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바이러스가 인터페론 경로를 교란하지 못하게 하는 약을 개발하면 감염증 환자를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사실 인터페론 치료제는 지금도 일부 유형의 감염증 환자에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엔 이런 약이 잘 안 듣는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알아냈다고 믿는다. 바이러스가 인터페론 경로를 손상한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스티븐슨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에 맞서 싸우고 입자 복제도 막는 선천 면역력을 복원하면 치료 효과를 대폭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 치료제는 바이러스를 직접 공격하는 길을 열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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