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옥탄알(octanal)이라고 하는 이 무색(또는 엷은 황색) 액체는 특이한 향기가 있어서 음료나 아이스크림의 착향료로 많이 쓴다.
그런데 혈액의 대식세포(macrophage)가 이 옥탄알 냄새를 맡고 동맥 염증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식세포와 옥탄알의 이런 작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는 처음이다.
동물실험을 해 보니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염증은 심혈관 질환이나 아테롬성 동맥경화증을 유발했다.
심혈관 질환의 주요 지표인 LDL(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은 혈액의 옥탄알 수위도 높았다.
하지만 대식세포가 옥탄알 냄새를 맡지 못하게 막으면 염증도 사라졌다. 옥탄알 수위 상승은 음식물 섭취나 세포의 산화 스트레스 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라호야 면역학 연구소(LJI)의 클라우스 리(Klaus Ley)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3일(현지 시간)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그동안 LJI 과학자들은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많이 내놨다.
LJI의 새라 매카들 박사팀은 2019년, 대식세포가 옥탄알 같은 분자의 냄새를 맡는 데 필요한 후각 수용체를 일부 갖고 있다는 걸 처음 밝혀냈다.
그 이듬해에 대식세포가 OR6A2라는 후각 수용체를 이용해 옥탄알 냄새를 맡는다고 학계에 보고한 것도 LJI 연구진이다.
이번 연구에 제1 저자로 참여한 마르코 오레키오니 박사는 "중요한 면역계 세포 중 하나인 대식세포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의 신호를 확인하지만, (염증을 일으킬 땐) 냄새를 맡고 반응한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혈액에 옥탄알을 주입했다. 한 그룹은 대식세포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들로, 다른 그룹은 이 유전자가 정상인 야생형 생쥐들로 구성했다.
대식세포의 후각 수용체가 건재한, 다시 말해 옥탄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생쥐 그룹에서 염증이 더 나빠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테롬성 동맥경화증 병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몬과 비슷한 향이 나는 시트랄(citral) 분자로 후각수용체를 차단하면 생쥐 염증이 확연히 줄었다. 같은 방법으로 대식세포가 옥탄알 냄새를 맡지 못하게 막으면 동맥경화증도 완화됐다.
연구팀은 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대식세포 후각 수용체(OR6A2)가 발현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레이 교수는 "사실 이 수용체는 약물 표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라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약은 GPCR이라고 불리는, 같은 유형의 수용체에 작용한다"라고 설명했다.
레이 교수팀은 인간의 대식세포에서 발견된 OR6A2 외 다른 후각 수용체가 어떤 일에 관여하는지 연구 중이다.
특히 후각 수용체가 2형 당뇨병과 같은 대사질환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집중해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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