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CTCs가 멀리 떨어진 다른 기관에 새로운 종양으로 착근하려면 전이 부위의 종양 미세환경이 좋아야 한다. 비옥한 토양에 떨어진 씨앗이 뿌리를 더 잘 내려 건강하게 싹을 틔우는 것과 비슷하다.
종양 미세환경이 나쁘면 암의 씨앗이 휴면 상태로 묶여 하나의 종양으로 자라지 못한다는 가설은 이런 개념에서 나왔다.
그런데 암세포 전이에 관여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새롭게 밝혀졌다. CTCs가 떨어져 나온 원발 암(primary tumor)이 '원격 제어'로 전이암의 형성을 돕는다는 게 요지다.
또 온몸의 혈관 세포가 CTCs의 전이를 촉진하는 특정 성장 인자(growth factor)를 생성한다는 것도 확인됐다.
독일 암 연구 센터(DKFG) 혈관 종양학·전이 디비전의 헬무트 G. 아우구스틴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번 연구의 목표는 암의 씨앗이 착근하는 데 유리한 종양 미세환경, 즉 '전이하기 좋은 자리(metastatic niche)'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밝히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암세포 무리가 유방에서 폐로 옮긴 생쥐를 모델로, 전이에 유리한 폐의 종양 미세환경에 어떤 유전자가 발현하는지 전체적으로 분석했다. 이어 원발 암을 절제한 생쥐에 전이암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관찰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종양 미세환경의 어떤 부분이 멀리 떨어져 있는 원발 암의 제어를 받고, 어떤 부분이 새로 옮겨간 부위의 영향을 받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유방 원발 암이 제거되기 전엔 CTCs가 도달한 폐 혈관 내벽 상피세포가 LRG1(leucine-rich alpha-2-glycoprotein 1)이라는 단백질을 대량 생성했고, 그러면 이 단백질이 주변 연결 조직세포 성장을 자극했다. 폐로 옮겨간 암세포 무리가 성장하기에 유리한 종양 미세환경은 이렇게 조성됐다.
혈액을 타고 돌던 암세포 무리가 둥지를 틀기에 좋은 입지를, 늘어난 연결 조직 세포가 제공하는 셈이다.
더욱이 폐에 자리 잡은 암세포가 어느 정도 자라면 마치 자신이 원발 암인 것처럼 스스로 LRG1의 생성을 촉진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원발 암이 이렇게 전이 촉진 효과를 촉발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생쥐 모델에 항체를 투여해 LRG1을 차단하면 전이암의 성장이 느려진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더 실험해 보니, LRG1은 암세포 무리가 옮겨간 부위의 혈관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암세포 무리가 원발 암에서 이탈하면 온몸의 혈관 내벽 상피세포에서 LRG1을 만들어 혈액으로 흘려보냈다.
이 발견으로 혈액 샘플에서 직접 전이 촉진 분자를 검출하는 조기 진단법 개발이 가능해졌다.
논문 교신저자를 맡은 아우구스틴 박사는 "혈관 내벽 상피세포가 만들어내는 LRG1을 검사하면, 전이암 위험을 알려주는 생물 표지로 활용할 수 있다"라면서 "아울러 종양의 전이를 막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 표적으로도 LRG1이 유용하다는 걸 입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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