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미생물이 인간의 면역계 구성에 곧바로 영향을 미쳐, 어떤 박테리아가 장에 많은지에 따라 혈중 면역세포의 유형별 수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장 미생물군과 인간 면역계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의학적으로 입증된 건 처음이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과학자들은 최근 저널 '네이처(Natur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1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에 따르면 이는 혈액암 환자 2천여 명을 치료하면서 10년 넘게 취합한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다.
컴퓨터 시스템 생물학 전문가이자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호아오 사비에르 박사는 "장의 미생물이 인간의 면역계에 중요하다는 건 과학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기존의 그런 추론은 대부분 동물 실험 결과를 근거로 제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비에르 박사팀은 MSK에서 동종 줄기세포·골수 이식(BMTs) 치료를 받은 혈액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험 관찰 및 분석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고강도 화학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공여자의 조혈 줄기세포를 이식한 환자들이다.
이런 환자는 이식 후 처음 수 주 간, 다시 말해 백혈구 등 공여자의 혈액 세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극도로 감염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강도 높은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그 부작용으로 건강에 이로운 장의 미생물(유익균)이 파괴되고 그 빈 자리에 유해한 미생물(유해균)이 들어차곤 한다.
장의 유익균은 환자 면역계가 재건되고 항생제 투여가 중단되면 다시 서서히 자란다.
이렇게 면역계와 장의 유익균이 동시에 타격을 받았다가 같이 회복하는 과정이, 둘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기회가 됐다.
MSK의 골수이식 팀은 10년 넘게 환자 혈액과 분변을 채집 분석해,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장 미생물 유형 등에 관한 데이터세트를 완성했다.
사비에르 박사팀은 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해 혈중 면역세포 유형, 투여된 약물 정보, 부작용 등 필요한 정보를 이 데이터세트에서 뽑아냈다.
연구팀은 지난 2월에도 BMTs 치료 과정에서 장의 미생물군 변화가 환자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한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논문의 골자는 장 미생물의 다양성이 높을수록 BMT 치료 이후 사망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골수 이식 전에 미생물 다양성이 낮으면 이식편대숙주병(graft-versus-host disease) 위험이 커진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수혜자의 건강한 조직을 공격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합병증이다.
사비에르 박사는 "어떤 유형의 면역세포를 늘리거나 줄여야 하는지도 다른 체내 작용에 따라 매일 달라질 만큼 복잡하다"면서 "중요한 사실은 이 복잡한 장내 생태계를 연구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다른 유형의 암 치료 환자에도 이번 연구 데이터를 적용해, 면역계와 장 미생물군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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