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는 의료사고에서 의사 과실을 교통사고의 과실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양쪽 모두 동일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사고 과실과 교통사고의 과실은 실질적으로는 별개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과실범은 주의의무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를 과실이라고 인식한다.
교통사고를 예로 든다면, 운전자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잘 보면서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만약 전날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반쯤 졸음운전을 하다가 보행자를 차로 치는 사고를 일으키면 이 주의의무를 어기고 졸음운전을 한 과실이 있다고 말한다.
졸음운전을 안 하고 앞을 잘 봤으면 보행자를 미리 발견하고 차를 멈춰서 결과 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과실은 영어로 'negligence'인데, 이 단어가 과실 외에 부주의와 태만 등으로 번역되는 것을 보더라도 그 개념을 추론할 수 있다.
교통사고 등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는 여기에 더해 '허용된 위험'이라는 법리가 있다. 자동차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정한 비율의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자동차 운전자의 주의의무에 대한 책임을 완화해 주자는 것이다.
또 '신뢰의 원칙'이라는 법리도 있어서 운전자는 다른 차의 운전자나 보행자가 정상적으로 운전이나 보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운전하기 때문에 보행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해서 사고를 회피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과실을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자동차 운전을 업무로 취급하기 때문에 교통사고와 의료과실은 모두 형법상 동일한 조문인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된다. 다만 교통사고는 특별법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의해서 처벌이 감경되거나 면제되는 예외조항이 있다.
그리고 이 예외조항에 의해 앞서 말한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 같은 경우 피해자가 죽지 않는 한 처벌이 면제된다. 반면 의사에게는 그런 면책조항이 없다.
의료인에 과도하게 요구되는 '주의의무'
법원이 의료과실의 존부(存否)를 판단할 때 형식적으로는 주의의무와 회피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의사 과실을 인정하려면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또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못한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과실범과 동일한 기준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이런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 실제 사례에서 법원은 의료인의 주의의무를 매우 높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의사를 신과 같은 존재로 상정해서 어떤 잘못도 저지르면 안 되고 결과 발생을 무조건적으로 회피할 능력이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것 같다.
이런 차이 때문에 법원은 교통사고에는 적용되는 허용된 위험과 신뢰의 원칙이라는 법리를 의료사고에 적용하는 데 주저하는 듯하다. 동일한 과실의 개념으로 포섭한다면 동일한 법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임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의사에게는 매우 고도의 주의의무가 요구되고, 다른 사례라면 과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조차 과실이 인정된다.
의사에게는 진료 의무가 부여되는데 자기 전공이 아닌 과목의 진료를 요구받은 의사가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과실 책임을 추궁받는다.
또 긴급 상황에서 제반 여건이 매우 열악할 때도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과실이 있다고 의심받는다. 그리고 이런 과실 인정의 범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는 듯 하다.
의료사고 과실은 'negligence'인가 'mistake'인가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를 비교하면 교통사고는 운전자 과실로 인해 정상적인 상황이 비정상 상태로 전환된다. 즉 운전자의 과실이 문제의 원인이다.
반면 의료사고에서 의사는 타인 행위 등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개입한다. 미용성형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의사가 추궁받는 과실은 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느냐는 비난에 가깝다. 문제 야기와 해결은 분명히 전혀 다른 개념인데도 말이다.
의료과실이 발생했을 때 의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수를 한 사람으로서 설사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환자 상태가 악화됐을 가능성보다는 의사 개입으로 인해 약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상대적으로 덜 악화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환자를 비롯한 법조인들은 치료 과정을 사후에 검증하면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조치와 비교해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결과에 영향을 줬는지를 불문하고 이를 과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일종의 사후확증편향이다.
우리 법이 의료사고에서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의사의 과실은 'negligence'가 아니라 단순한 'mistake'나 'error' 정도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개념임에도 'mistake'나 'error'를 'negligence'로 취급하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의사가 과실로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은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negligence'에 국한돼야 한다. 심지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존재 때문에 'negligence'를 범한 경우에도 의사는 사고 운전자보다 더 중하게 처벌받는다. 의사들이 의료사고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도 이런 데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법조계가 내부 논의를 통해 의료사고에서 'mistake'나 'error'를 과실 개념에 포섭하는 잘못된 경향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