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소위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대한민국호(號)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만연한 부정청탁과 뇌물 등으로 얼룩진 각계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국가 단위의 실험이 9월28일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전체는 아니지만 대학병원 교수와 일부 종합병원 의사들 역시 이 실험군에 포함됐다. 리베이트 등 부정적 이미지 탓에 향후 진료 및 입원과 관련된 사안에서 의사 집단에 대한 집중 모니터링이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위장 환자복을 입은 '란파라치' 등장을 예고하기도 한다.
오래 전 리베이트 쌍벌제를 계기로 의과대학 교수실에 ‘영업사원 출입금지’ 팻말이 붙었지만 십 수년 이어온 관행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다. 수사당국 역시 이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추계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식사장소나 비용, 홍보부스 설치, 기념품 지급 등을 세부사항을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대학병원을 비롯해 각 제약, 의료기기업체들이 그간 소홀히 했던 ‘금품·향응 절대 금지’를 주제로 내부 교육을 실시하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개원가도 적용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자문위원 등으로 이름을 올린 의사도 이 법을 적용받게 된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취재과정에서 ‘모호한 규정’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기자들도 적잖다.
“당분간 소나기를 피해야 한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애매한 상황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모 대학병원 교수의 말은 김영란법을 맞이하는 의료계의 현주소다.
일각에서는 “쌍벌제보다 과도한 규정이 적용되는 김영란법으로 정상적인 학술활동 및 마케팅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김영란법을 향한 ‘억울한 시선’이 아닌 이를 토대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행’이란 명목으로 묵과해오던 갑을관계의 각종 지원과 청탁문화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반추해보면 김영란법에 걸릴 만한 관행이 다반사일정도로 수두룩하다. 과감히 청산돼야 할 구태(舊態) 임은 분명하다.
다소 엄격한 규정 때문에 적극적 대응체계를 설정하는 것에 주력한다는 입장도 일견 수긍이 되지만 악습을 끓어버리려는 마음가짐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결국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고 있는 거대한 실험의 희생양이 아닌 새로운 발전을 위한 주요 지표로 설정될 수 있도록 의료를 포함한 보건의약계의 환골탈태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김영란법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한 이 시대의 요구다. 이번 기회마저 잃는다면 보건의약계는 무너진 신뢰 회복이 요원해질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