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렸던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서 환자 진료업무까지 적용대상 논의에 오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처벌 사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좋으나 지나친 위축은 역으로 환자를 보는 데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경기 하남시보건소는 뜻하지 않게 ‘청탁금지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원인은 근래 시행한 무료 독감예방접종이었다. 보건소가 하남시의회 의원들에게 '공짜 예방접종'을 해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보건소는 임시의회가 있었던 지난 11일 의회 내에서 시의원 6명에게 백신 접종을 실시했다. 해당 백신은 일반인이 맞으려면 2~3만원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가격과 관계없이 의회는 보건소 감시기관이어서 업무 관련성이 분명하므로, 금품 수수가 이뤄졌다면 청탁금지법에 따라 무조건 과태료 및 행정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하남시보건소에 따르면 제기된 의혹과는 달리 해당 접종은 청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하남시보건소장은 “시의원들이 평소 주민들과 최일선에서 접촉하기 때문에 백신이 필수라고 판단해 접종을 시행한 것”이라며 “의원들을 무료접종 대상 중 ‘기타’로 분류해 공적 행정절차까지 마친 상태에서 접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메르스 이후 감염병 예방에 집중하고 있던 보건소는 자연히 의료진 등을 통한 질병 전파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됐고, 하남시 및 경기도의원들이 감염병 대응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일선에서 활동하는 시·도의원들에게 접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에 현재 63~64세에 해당하는 노인들에게 시청에서 무료접종을 시행하던 중 의원들에게도 함께 백신 접종을 하게 된 것이다.
보건소장은 “청탁금지법을 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감염병 예방 효과를 위해서는 접종률이 80%에 준해야 하므로 그런 차원에서 시행하게 됐다. 취재 차 방문한 기자들까지 있었던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진 것인데 그런 지적이 나와 난감하다”고 답답함을 피력했다.
다자녀가정 진료비 할인도 김영란법 위반?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부산지역 한 병원에서 청탁금지법을 우려해 진료비 할인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현재 부산지역 내 병의원들은 부산시와의 MOU를 통해 다자녀가정 진료비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병원에서 청탁금지법 저촉을 우려해 해당 할인 제도를 없앴다. 이에 시민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부산시청 출산보육과 관계자는 "병원 한 군데에서 할인 혜택을 없애 민원이 들어온 사실이 있다"며 "진료비 할인이 청탁금지법 위반인지 권익위원회에 꾸준히 질의 중이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권익위의 공식적 답변이 있어야 병원 측과 협의를 통해 명확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텐데 연결이 잘 안돼 곤란하다"며 "병원 측 설명으로 더 이상의 민원은 들어오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권익위원회의 청탁금지법 사례집에 따르면 다른 법규에 규정된 사항은 청탁금지법 예외조항으로 허용될 수 있다.
진료비 할인이 ▲기존 병원 내규에 존재했으며 ▲통상·일률적으로 차별 없이 병원이 세운 기준을 충족시키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사안이라면 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내 병원 업무와 관련해 뚜렷한 해석이 부족한 탓에 처벌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으려면 관련 대응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료업무 불편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생각지도 못한 사항이 청탁금지법에 걸린다고 할 때가 많다”며 “청탁금지법이 시행돼도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일 자체를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병원 전문의도 “청탁금지법 때문에 접종이나 환자 진료비 할인을 못하게 된다는 측면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그러면 환자 진료를 보지 말라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