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한 달'···의료기관·심평원·공단 '신중'
'입원 등 청탁문화 근절 환영' 반응 속 '애매한 기준 개선 필요' 제기
2016.10.28 05:48 댓글쓰기

[기획 上]지속반복돼 온 일들은 굳어져 자연스럽게 관행이 된다. 이러한 관행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뜨거운 관심 속에 있던 부정청탁 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오늘(28일)로 한 달을 맞았다. ‘김영란법은 관행처럼 여겨졌던 국내 청탁 문화에 자성의 목소리를 심어주었다. 데일리메디는 지난 한 달간 청탁금지법이 의료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제약사 포함 산업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2회에 걸쳐 조명해봤다.[편집자주]

 

원래부터 이렇게 해야 했다.” 국립대병원 A교수는 시행 한 달여가 지난 청탁금지법을 두고 이같이 운을 뗐다.

 

그는 관행적으로 여겨지던 문화가 사라져 이제는 본연의 업무에 더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그간 의료기관에서는 지인 등을 통한 입원 순서수술 날짜 조정이 관행처럼 암암리에 허용돼왔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이 같은 새치기 진료행위에 전면적으로 제동이 걸렸다.

 

응급의학과 B교수는 그동안 의료기관 내에서 사돈에 팔촌까지 입원실 순서를 조정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청탁금지법이 만들어져 개인적으로는 속이 시원하다고 언급했다.

 

청탁금지법은 공공기관, 언론사, 학교 종사자 등을 비롯해 유관기관까지 범위가 확장되고 법 위반 시 처벌받는 대상도 당사자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포함해 준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처벌되기에 그 엄격함이 극대화됐다.

 

더불어 구체적으로 명문화돼 있지 않은 부분도 존재해 일각에서는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선의가 자칫 위법 행위로 오해받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립대병원 C교수는 환자들이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사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그런 관행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부정청탁을 사전에 방지하고 청렴 사회를 위한 초석을 다지자는 법의 본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오히려 행정 업무 부담이 늘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인 공직자 등의 범위에 속하는 국공립대학의 경우 공공기관과의 외부 회의 시 따로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민간기관인 경우는 물론 사적 관계에 있지 않은 공공기관과의 외부 회의도 모두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간호대학 D교수는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도 많지만 행정적으로 귀찮아진 부분도 많다건보공단 및 심평원과의 회의 시 사적 관계에 있지 않음에도 따로 신고 문서를 작성해야 해 불편함이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청탁금지법 관련 유권해석에 대한 문의는 2174건에 달했다. 즉 법 유권해석을 놓고 혼란스러움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례로 학생이 교사에게 카네이션과 캔커피를 줄 수 있느냐는 문의에 권익위는 원천적으로 금지되지만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명확하지 못한 답변을 해 혼란을 주기도 했다.

 

이와 관련, 사립대병원 E교수는 기본적으로 김영란법 입법 취지에 공감하지만 세부 규정들이 빨리 정비됐으면 한다권익위에 자꾸 유권해석을 맡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규정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기부금 문화 변화는 미미

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청탁금지법이 규정하는 공직자 등의 범위에 따라 국공립대병원은 물론 사립대병원 임직원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의료기관 내에서 외부 활동이 많은 홍보팀 직원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파다했다.

 

A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과 비교에 차이가 좀 있는 편이라며 법 시행 이후 민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장 큰 변화는 환자들이 감사의 인사로 떡 등을 주곤 했는데 이러한 관행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언론 홍보를 위해 기자와의 저녁 식사 자리도 청탁금지법에 저촉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언론과의 관계가 오히려 껄끄러워졌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B협력병원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자들이 홍보팀과의 접촉을 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구체적인 비율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기자들의 방문이 감소한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선의 차원의 커피 한 잔 대접도 이제는 어렵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C사립대병원 관계자 역시 현재 법무팀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1순위로 금지하고 있다. 원내 유관부서와의 교육을 지속해서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벤츠검사사건 등 고위공직자의 불법 청탁을 막기 위해 마련된 법이 오히려 선량한 피해자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D사립대
병원 관계자는 고위공직자 등 일반적으로 액수가 큰 청탁 문제를 막겠다는 본래 취지가 흐려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일부 의료기관 내부에서는 그간 긍정적 취지로 시행되던 기부금 문화가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의료기관에서는 관례로 병원 발전을 위해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에 한해 무료 건강검진 등 편의를 제공해주곤 했다.

 

청탁금지법으로 기부금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는 법 시행 한 달이 지난 현재 어떨까.

E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기부금을 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하지만 아직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아 단언하긴 이르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직 법 시행이 이제 막 한 달을 지난 상태에서 기부금 문화에 크게 변화가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F사립대병원 관계자는 본래 기본 건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현재까지는 법 시행으로 인해 기부금 문화가 위축되고 그런 것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G사립대병원 관계자 역시 기부금 문화가 위축됐다는 이야기는 현재까지는 병원 내부적으로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심평원·건보공단, 청탁방지담당관 직위 신설 등 자체 규정 마련

 

청탁방지법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재정 지원과 임원선임 등의 승인을 받는 공직 유관단체에도 영향을 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한층 강화된 규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며 청렴도 향상에 힘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양 기관은 청탁방지담당관 직위를 새롭게 만들어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등 직제 개편도 단행했다.

 

심평원 감사실 관계자는 이미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고 실무협의체도 구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법무지원단과 감사실을 중심으로 부서별 인력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사례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논의를 진행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은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기준을 내걸었다.

 

이와 관련, 심평원 감사실 관계자는 통상 3만원 이내 식사는 허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료기관이나 제약사 등 직무 연관성이 존재할 경우 식사를 아예 금지하는 것으로 자체 규정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실제 심평원 급여등재실, 급여조사실, 약제관리실, 정보통신실 등은 내부적으로 청탁금지법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 역시 청탁금지법을 두고 신중한 입장이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건보공단은 전국 전 지사 임직원이 참여하는 선물 안 주고 안 받기클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건보공단 감사실 관계자는 청렴도 1등 건보공단을 유지하기 위해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부터 금품수수 등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직원들에게 엄벌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꾸준히 전국 임직원 대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10월은 청탁금지법 교육에 치중하고 있으며 각 지사장을 대상으로 강의를 실시했다각 사례는 취합해 다빈도 질의사항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건보공단은 리플릿 배포, 동영상 홍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청렴도 문화를 조성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으며 오는 11월부터는 청탁금지법 실태점검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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