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못한다' - 둔위교정술 - '위험해서 안한다'
2013.10.23 17:59 댓글쓰기

‘자연분만’을 고집하는 산모가 늘고 있다. 제왕절개 분만이 감소세를 타는 것은 새로운 출산문화를 반영한다. 그 가운데 아직까지는 생소한 둔위교정술에 시선이 모아진다. 실제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인지 산모들 사이에서도 둔위교정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 치료 방법에 대한 시각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둔위교정술, 태아 자세 바로 잡을 수 있다”


태아의 머리는 보통 산모의 뱃속에서 아래쪽으로 자리를 잡지만 일부 태아는 머리가 위쪽으로 향하고 엉덩이가 밑으로 향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둔위(엉덩이가 아래에 있는 자세)태아’라고 부르는데 국내에서는 대부분 둔위태아를 분만할 경우 제왕절개를 실시한다.


둔위 상태에서 자연분만을 할 경우 탯줄이 태아의 목을 조르게 되거나 머리가 골반에 걸려 나오지 못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김광준 교수가 이 같은 둔위태아를 임신 36~37주 사이에 정상적인 자세로 돌려놓는 둔위교정술을 실시, 자연분만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7월 29일 중앙대병원에서 열린 ‘둔위교정술’ 산부인과 건강강좌를 통해 김 교수는 둔위교정술의 안정성 및 국내와 해외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둔위교정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유독 국내에서만 거꾸로 자리 잡은 태아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돼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90여 차례 둔위교정 사례 중 67% 성공…부작용 적어"


실제 그는 2011년 말부터 중앙대병원에서 둔위교정술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시행한 90여 건의 둔위 교정술 성공률이 67%”라고 밝혔다.


김 교수가 진행한 둔위교정술 사례는 89건으로, 이 중 60건은 태아의 자세를 역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 29건은 실패했다.


태아 자세를 돌리지 못한 경우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는 4건으로, ‘자궁수축’이 나타난 경우가 3건, 질 출혈이 발생한 사례가 1건으로 나타났다.


자궁수축이 일어난 산모 중 1명은 당일 제왕절개를 시행해 출산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에 둔위교정술에 따른 부작용은 적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둔위교정술을 실시하면서 태아에게 위협이 됐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다만, 한 산모의 경우 질 출혈이 일어났던 적이 있지만 곧 안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박민영 교수 역시  “미국 산부인과 학회의 경우 36주 이후 둔위가 발견되는 경우에는 ‘Level A’ 신뢰도로 일단 모든 여성에게는 먼저 태아를 돌려볼 필요가 있다고 권고 중”이라며 둔위교정술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80년대 이전까지 둔위교정술로 사망한 케이스는 4건으로, 이는 모두 전신마취에 따른 사고였으며 이후 집계된 사망사고는 2건으로 태아 모니터링 없이 둔위교정술을 시행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교수가 둔위교정술에 성공한 산모 중 출산까지 연락이 닿은 39명을 추적한 결과 이들 중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산모는 28명(72%), 제왕절개술로 출산한 산모는 11명(28%)으로 나타났다. 이는 둔위교정술로 자연분만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 같은 둔위교정술이 국내에서 생소한 이유는 국내 산부인과 의사들이 둔위교정술을 잘 모르기 때문이란 주장과, 제왕절개보다 위험하다는 주장이 충돌한다.


김 교수는 “제왕절개보다 둔위교정술을 통해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내에서 둔위교정술이 생소한 까닭은 의사들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할 때 20여 명의 교수님이 있었지만 둔위교정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지금 다른 병원들도 그때와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제왕절개가 더 안전하기 때문에 둔위교정술을 시도하는 것이 무리라는 비판도 따른다. 또한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둔위교정술이 국내보다 많이 시행되고 있는 이유는 제왕절개가 자연분만보다 고가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소재 대형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예전에는 둔위교정술을 했었지만, 세계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추세”라고 지적했다.


둔위교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탯줄이 꼬여 태아의 기도를 막는 등 위험이 있는 반면, 제왕절개의 안전성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교수는 “산과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 산모와 태아를 상대로 굳이 ‘둔위교정술’이라는 모험을 택할 이유가 없다”고 피력했다.


이 같이 둔위교정술을 염려스러운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현행 정책과 환경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산모들이 자연분만을 고집해 둔위교정술을 한다고 해도 분만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분쟁 소송 비용 등 대부분이 개인에게 책임이 지워지는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 않아 생길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위험 부담안고 둔위교정술, 글쎄…”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A교수는 “둔위교정술에 대한 안전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위험 부담을 안고 ‘모험’을 할 의사들은 현 상황에서 많지 않다”면서 “심지어 제왕절개를 해야 그나마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라고 개탄했다.


A교수는 특히 “둔위교정술을 한다고 해서 높은 수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확률이 단 1%라고 해도 어떤 의사가 이를 감내할 수 있겠나. 이는 인력 부족 및 수가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연분만 중 분만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청구 금액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제왕절개를 하다가 분만사고가 있을 때 뇌성마비 등의 장애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의사의 선택이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지 무조건 정책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골자다.

 

의료분쟁 피하려 제왕절개 선택?


자연분만 장려 분위기가 자칫 의료사고를 더 늘릴 수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부산대병원 산부인과 B교수는 “자연분만 장려 차원의 수가 인상, 그리고 의료계와 소비자단체 등의 홍보로 자연분만이 늘고 있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둔위교정술을 고려해볼 수는 있으나 실제 산부인과에서는 의료분쟁의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자연분만을 선택함으로써 생기는 위험부담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더욱이 출산 주 연령대가 2005년부터 30대로 바뀌어 노산이 늘어나는 등 사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B교수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료분쟁을 피하기 위해 둔위교정술 대신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들며 자연분만을 기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심평원측이 급여비가감지급사업과 관련한 연구사업을 위해 실시한 설문자료 중 산부인과 전문의 291명 중 64.4%인 194명이 ‘의료사고를 피하기 위해’라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 측의 지원은 이 같은 현장의 불만과 관계없이 수가 보정이나 홍보 차원에 머물고 있어 둔위교정술 등 일련의 치료 방법에 있어서도 시각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사실 대부분의 전문의들은 자연분만이 더 안전하며, 장점이 더 많다고 설명한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C교수는 “그럼에도 법원 판결에 있어 자연분만의 경우 더 무거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말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도 “자연분만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왜 수술을 안했냐며 마치 일부러 최선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매도한다”면서 “얼마나 허탈하고 비참한 일인가”라고 성토했다.

 

“의료사고 위험 높아지는데 책임은 개인에게”


국내에서 여전히 둔위교정술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와 늘어나는 산부인과 의사의 분만 현장 이탈이 전혀 무관치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


C교수는 “혹여 소송에 지면 막대한 보상비용에 무과실 분쟁도 의사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며 “지금도 자연분만 할 때면 갈등의 순간이 온다. 한번 사고가 나면 의사들은 과중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결국 방어진료만을 선호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물론, 둔위교정술 시행건수 증가는 자연분만을 선호하는 산모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다. 또한 둔위교정술의 장점도 부각되면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 관악구에서 분만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산부인과 원장은 “얼마 되지도 않는 수가를 받자고 자연분만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이러한 우려 때문에 제왕절개를 선호하게 되는 경향도 없진 않다”고 말했다. 둔위교정술 수가를 떠나 분만실에 서 있는 의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원장은 “매년 제왕절개율을 공개하면서 자연분만을 독려하는 정부의 뜻대로라면 분만사고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 에 없는데 의사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정도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강애란·정숙경 기자 (jsk6931@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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