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들의 역차별 논란이 일었던 의료폐기물 멸균분쇄시설 설치 기준이 대폭 완화된다. 고질적인 의료폐기물 처리 부담과 스트레스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특히 소각 잔재물 ‘매립’ 의무화도 없어지면서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 방식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그동안 중소병원들에게 사실상 허용되지 않았던 멸균분쇄시설 기준 완화다. 중소병원들의 의료폐기물 처리방식 선택권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현행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는 ‘의료폐기물 배출자가 설치하는 멸균분쇄시설 처분능력은 시간당 100kg 이상 시설’로 명시돼 있다. 2001년 이후 23년째 동일한 기준이 적용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적어도 700병상 이상 대형병원 정도는 돼야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일반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들은 원천적으로 설치가 불가하다는 얘기다.
대형병원들 역시 기준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대형 멸균분쇄시설 설치를 위해 적잖은 공간이 필요한 만큼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때문에 현재 국내 의료기관 중에 멸균분쇄시설을 가동하는 곳은 분당서울대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 시화병원, 가천대길병원 등 4개에 불과하다.
병원 내 멸균분쇄시설을 설치, 운영하면 기존 의료폐기물 처리 비용의 최대 70%까지 절감할 수 있음에도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저변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해 쓰레기인 의료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 방식에 몰두하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계 의료폐기물 처리방식은 기존 ‘소각’에서 ‘멸균‧분쇄’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환경계획(UNEP)는 멸균분쇄시설을 통한 처리를 권고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심지어 개발도상국들도 의료폐기물의 일정 비율을 멸균분쇄 방식으로 처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폐기물 멸균분쇄방식 기준이 수 십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어 관련 환경기술 산업경쟁력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환경부는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멸균분쇄시설 최소 처분능력을 시간당 100㎏에서 30㎏로 완화토록 했다.
뿐만 아니라 멸균분쇄시설의 다양한 기술 도입을 위해 폐기물처리시설검사기관에서 멸균능력을 확인받은 시설도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멸균분쇄시설 기준 완화에 따라 중소병원들이 자체 멸균시설 도입을 통해 의료폐기물 처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일선 병원들의 의료폐기물 처리비용 절감과 함께 의료폐기물 지역편중 완화, 폐기물 이동거리 최소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의료폐기물 소각 잔재물 매립 처리 조항이 삭제된 부분도 주목할만 하다.
현행 규정으로는 다양한 처리방식을 허용하고 있는 일반 폐기물과 달리 의료폐기물 소각재는 무조건 매립토록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의료폐기물 소각 잔재물은 일반폐기물 소각 잔재물에 비해 유해성이 유사하거나 낮음에도 불구하고 매립 처리방식만 허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폐기물 소각 비산재의 유해물질 농도는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비산재에 비해 유사하거나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환경부는 이번 개정안에 의료폐기물 소각 잔재물을 매립 방식으로만 처분토록한 규정을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