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병상 축소는 '목표 아닌 과정'
고용안정·간호사 업무범위 조정·과감한 기술 도입·수련시스템 개편 등 과제
2025.01.02 11:16 댓글쓰기



[기획 4]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서 ‘병상 축소’는 단지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이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제기된다. 


병원계가 병상을 축소하면서 수많은 간호사에 대한 배치 조정 등 구조조정 논의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또 시범사업이 지향하는 전문의 중심병원 구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도전문의 진료부담을 경감하는 등 수련체계 변화도 대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은 “규모 확장보다 의료 질(質) 제고에 집중토록 일반병상을 축소하고, 중환자 병상을 확대해 중증 중심 병상을 확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력과 관련해서는 “인력 감소 없이 현재 규모를 유지하며,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교육·훈련 및 업무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전문의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운영가능토록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병원들 입장에서는 인력 부담 우려 및 경증환자 감소로 인한 경영악화, 병상 운영 어려움, 지역 의료기관들의 역량 부족 등이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간호사·간호조무사 부서 이동 러시…‘고용안정 대책’ 마련 절실 


이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유현정 이화의료원 지부장은 ‘고용안정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지부장에 따르면 이대목동병원은 612병상에서 554병상으로 감축 운영하게 되면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의 부서 이동이 이뤄졌다. 


그는 “의정갈등 속에서 무급휴가와 연차촉진 등을 직원들에게 강제해 왔는데, 대다수 병원이 신규 직원을 뽑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구조전환으로 병상이 줄면서 현재 인력에서 사직자 대체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서 실질적으로는 인력이 감축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들이 현재보다 중증환자 진료를 강화한다면 의료진의 업무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지부장은 “질 높은 진료를 위해서는 의사 인력 대책뿐 아니라 간호인력과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동시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증과 희귀질환 중심이 되려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확대해고 간호인력 당 환자 수를 1대 5로 실현하는 등, 의사 외 고난도 진료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채용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지금도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시간 외 근무 및 휴일근무가 이어지고 있다”라며 “특히 응급실, 중환자실 등의 인력 부족 문제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간호사 업무범위 문제 여전…병상 감축 시 세부 지원기준 마련


연세의료원의 경우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신촌 소재 세브란스병원 두 곳에서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약 370병상이 축소되면서 간호사 배치 조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간호법이 올해 8월 통과했지만 시행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일반간호사, 전담간호사,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 논의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윤옥 세브란스병원노조 고충처리부장은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과제를 단순히 인력 재배치 문제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고충처리부장은 “현장에서는 권한 없는 책임에 대한 부담감 호소, 불필요한 단순 업무 배정에 대한 불만과 숙련되지 않은 업무 사고 우려 등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병상 감축 시 세부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게 이 고충처리부장 입장이다. 병상축소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병원들이 수입이 적은 과를 축소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고충처리부장은 “그렇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병상을 축소하면 환자가 많은 과는 병실 부족으로 수술과 입원이 지연될 수 있다”며 “실제 암환자는 병상이 부족해 수술과 항암 시기가 밀린 사례가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도약 불가…‘재원’ 마련 핵심


박종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고려의대 교수)은 상급종합병원의 이상적인 지향점을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에 박 원장은 ▲과감한 IT기술 접목 ▲환자 1인 당 간호간병인력 대대적 충원 ▲무분별한 검사와 시술행위 근절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인력 구조조정과 획일적인 병상 축소, 의료전달체계 강요만으로 지역 간 균형 있는 의료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비급여의 무한확장을 그대로 둔 채로, 급여 위주의 중증 질환 분야 발전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우리 의료 미래 지향점이 무엇인지 정부가 청사진을 보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옥민수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재원’을 강조했다. 


정부의 목표대로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밀도 있는 수련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옥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의료질평가지원금 제도 내 교육수련 영역의 평가 결과로 지급되는 지원금 전체 규모는 입원과 외래를 합쳐 총 6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2021년 기준 45개 상급종합병원이 균등하게 받으면 기관별로 약 13억원을 지원받는데, 각 병원 전문과목 수를 고려하면 과별로 돌아간 지원금은 적다. 


옥 교수는 “교육수련 영역에만 초점을 둔 더 큰 규모 평가체계 및 재원이 마련돼야 제대로 수련병원을 지원할 수 있다”며 “특별회계 및 기금 추가 마련을 논의하고, 다양한 기금 활용 목적에 교육수련을 추가할 수도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의 교육수련 기능 강화를 위해 지도전문의들 진료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옥 교수는 “전문의 중심병원보다는 전문의 육성병원이라는 명칭이 어떨까”라며 “교육수련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전담할 전문의를 배치해 또 다른 전문의를 육성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진료·교육·연구의 적절한 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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