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내몰린 대한민국 '신생아중환자실'
“20개병상 미만 원활한 운영 불가능, 의료인 충원 전제돼야 정상 가능”
2018.04.10 18:00 댓글쓰기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한날 사망한 참담한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석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및 역학 분석에서 지질영양제 ‘스모프리피드’ 투약 과정에서 항생제 내성균 ‘시트로박터 프룬디’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 사망 원인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와 의료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의료계 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단 이대목동병원 뿐만 아니라 신생아중환자실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편집자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월4일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신생아에게 투여된 지질영양제가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경찰은 이미 입건된 의료진 5명 외에 신생아중환자실 소속 교수 2명을 추가로 입건했다. 이들은 부서 내 간호사를 대상으로 수시로 진행해야 하는 감염 예방 관리 교육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등 지도 및 감독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간호사 중 일부가 수액세트 개봉 시 소독 등의 위생 관리 지침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며 “수간호사와 전공의· 교수들은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서울시 및 양천구보건소 등 20여 명은 2월21일부터 28일까지 이대목동병원에서 대대적인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중요한 것은 ‘왜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가 사망했는지’보다 ‘어떻게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대목이다. 책임 소재를 따져 사건의 책임을 묻겠다는 분위기로만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신생아중환자실의 현 주소에 대해 철저하게 되돌아보고 이대목동병원 사태 원인을 제도나 구조만의 문제로만 정리해서도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이번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터진 후 해당 병원 주치의, 전공의들이 줄줄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대한신생아학회를 비롯해 의료계는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은 실상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해 왔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4명 사망 사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치의, 전공의 및 간호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반감이 확산된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불합리한 감염관리 책임을 전가할 경우, 집단 파업 등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가 하면 대한신생아학회도 강경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대한신생아학회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의료진들이 범죄자로 간주된 채 조사를 받고 있다”며 “이번 사건이 의료진의 법적 처벌로 이어진다면 중환자 진료 전문인력의 연쇄적 이탈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국내 중환자 진료 근간의 붕괴라는 국가적 재난 사태로 파급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중환자실 진료 체계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신생아 전문의 태부족···중환자 의료시스템 총체적 문제

같은 맥락에서 신생아 중환자 진료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신생아 전문의와 경력 간호사 등 전문의료인력 확보에 집중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 경찰, 병원 등이 이번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사망 사건의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 하려는 듯한 모습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NICU 근무 거부, 집단 파업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입장을 거듭 내비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의료인력을 둘러싼 현장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신생아학회 관계자는 “전문의에 합격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신생아 전임의 원서 접수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생아 중환자실 전임의가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대형 대학병원이라면 버틸만 하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씁쓸해 했다.

이어 “그러다가도 ‘신생아 전문의가 1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가 정착되면 작은 규모 병원에서는 훨씬 힘들어지지 않을까’ 등을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중환자 의료시스템의 총체적 문제와 진료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우리나라는 평균 적으로 2명의 전문의가 30명의 미숙아를 365일 돌보는 무리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간호사 1명이 미숙아 중환자 4명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만든 제도 설계자의 탓이 크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신생아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병원들 입장에서는 15개의 병상을 1명의 전문의가 담당해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는 수가다. 이런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해 온 것이 가장 큰 사건 발생의 이유”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생아중환실의 감염관리 시스템을 보완하고 안전과 직결되는 특화된 의료기기 및 약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하라는 의견도 나온다.

소아과학회 관계자는 “감염 경로를 명백히 밝히고 이번 사건 이후 제안된 전문가들 의견을 귀담아 듣고 보다 향상된 중환자 진료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생아중환자실 10곳 중 8곳 전담전문의 ‘2명 이하’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신생아중환자실의 시설·장비 확충 및 현대화도 필요하지만 전문의료인력을 확보하는 대책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단기 대책으로 원인불명의 다수 사망 사고에 대한 보고 체계 개선, 신생아중환자실 감염관리 개선, 신생아 중환자실 진료 환경 인프라 개선, 신생아중환자실 평가기준 개선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한주산의학회 최병민 부회장(고대안산병원)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진료하는 의료인 충원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 부회장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생아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전담 전문의가 2명 이하인 의료기관이 무려 약 82.5%(80/97) 이고 1명이 근무하고 있는 의료기관도 약 43.3%(43/97)에 달한다”고 짚었다.

전담전문의 1인당 환자 수는 평균 9.7명(0.3∼30.9명)이고 신생아중환자실 병상 수 대 간호사 수 비율을 살펴봐도 1등급 (0.75:1 미만)인 의료기관 29.6(21/71)%, 2등급(0.75:1-1.0:1)인 의료기관 46.5%(33/71), 3등급(1.0:1 이상) 23.9%(17/71)으로 아직 충분한 간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최 부회장은 “간호사는 1일 3교대(4.5배 인원 필요)로 근무하기 때문에 1등급인 경우 간호사 1인당 3.4 명의 신생아를, 2등급인 경우 간호사 1인당 4.5 명의 신생아를 돌보고 있는 실정” 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국 20개 병상 미만의 신생아중환자실을 보유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54.6%(53/97)다. 소규모의 지역 신생아중환자 실에서는 효율적인 인력 및 시설· 장비의 활용이 원활하지 못해 적극적인 지원과 대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최 부회장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극소이른둥이)를 주로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에 대해서는 중환자를 많이 치료할수록 적자 폭이 커지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지역 진료체계 내에서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고위험신생아의 진료 이외에 안전한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환자 및 의료진의 안전, 적정성 및 질 평가 등을 교육할 수 있는 전문 의료진 충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다행히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8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지원사업’으로 2017년까지 전국 50개의 의료기관에 총 445개의 신생아집중치료실 병상이 확충됐고 병상당 연간 800만원의 운영 지원을 받고 있다.

최 부회장은 “정부 지원과 함께 전문의료인력에 대한 충원 문제가 해결되고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료진들도 의료 질 향상과 안전한 병원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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