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가 본격 돌입됐지만 ‘세월호 7시간’과 맞물려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처방 의혹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진상 규명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최순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3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동안 보건복지부, 법무부, 대검찰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연금공단 등 5곳으로부터 1차 기관보고를 받았다.
복지부 기관조사에선 ▲청와대 마약류 소비 ▲차움의원과 김영재의원의 대리처방 및 진료기록 허위작성 ▲차병원그룹 특혜 논란 등이 다뤄졌다.
하지만 특위가 의료 게이트 사실 관계 파악에 할애한 시간은 30여 분 밖에 되지 않았고, 답변도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지금까지 불거진 수 많은 의혹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었다.
“靑, 2013년 ‘스틸녹스’ 등 마약류 1110정 구매, 대부분 복용”
그나마 청와대가 2013년 마약류로 지정된 의약품을 1110정 구매해 대부분 소비한 사실이 이날 새롭게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대통령경호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 2013년 4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스틸녹스’ 210정, ‘할시온’ 300정, ‘자낙스’ 600정 등 총 1110정의 마약류를 반입해 현재까지 836정을 소비했다.
스틸녹스는 방송인 에이미가 과다복용해 처벌받았던 약물로, 주성분은 졸피뎀이다. 할시온은 장기간 복용할 경우 환각증세 등 심각한 부작용으로 해외에서는 사용이 금지됐다. 국내에서도 10일 이내 단기 처방만 허용된다.
김한정 의원은 “청와대 의무실은 대통령 전용으로, 사실상 일반 직원들이 출입하지 않는다. 해당 약품들이 상당부분 소비된 이유가 의문”이라며 “경호실은 이 중 자낙스를 시차 극복 목적으로 구입했다고 하는데, 실제 도움이 되는지 의사인 장관이 설명하라”고 물었다.
정진엽 장관은 “수면유도제로 처방하는 자낙스는 그렇게 위험한 약은 아니지만 장기간 복용하면 안 된다”면서도 “다만 약효가 3~4시간 가기 때문에 단기간 비행기에서 먹고 잘 수 있는 효과는 있다”고 답변했다.
‘제2의 프로포폴’로 알려진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에 대한 위험성도 언급됐다.
정진엽 장관은 “이 주사제를 대통령이 처방전 없이 투약받는 것은 국가 안위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지 않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용주 의원 질의에 “비전문가가 쓰기에는 위험한 약”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에토미데이트는 마취 전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 사용된다”며 “대통령이 투여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검찰 조사 후 발표가 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최순실 차움 진료기록 전체 공개 '팽팽'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복지부에 차움의원의 최순실 진료기록 전체 제출을 요구했다. 최순실이 차움에서 어떤 병명으로 주사제를 맞았는지 밝혀져야 의혹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최씨는 2010년 8월 첫 진료 이후 올해 6월까지 약 6년 동안 차움을 다니면서 총 293회 주사제를 처방 받았다.
강남구 보건소 조사에서 확인된 총 29회의 대리처방 의심 기록에는 없지만 최씨는 차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자낙스 0.25mg’, '리보트릴정', '리제정' 등을 사용했다.
윤소하 의원은 “진료기록을 봐야 누구에 의해 어떤 병명으로 무슨 의약품을 얼마나 처방 받았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다”며 “국민들이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정진엽 장관은 진료기록을 공개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4개 법무법인에 자문한 결과 국가 안위나 기밀 사항을 공개하는 게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윤 의원은 “최순실 진료기록이 국가 안위와 연관됐다고 장관이 자인하는 건지 묻고싶다. 오히려 감춰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최순득 명의로 차움에서 이뤄진 박 대통령 혈액검사 결과와 관련된 자료 제출도 요구했다. ‘국가 2급 기밀 사항’인 대통령 혈액이 외부로 반출된 이유가 설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리처방과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연락 두절된 이유가 보고받지 못하거나 반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의혹이 풀린다”며 “김상만, 김영재, 간호장교, 주사제, 마취제 등을 연관시켜보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그 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말하기 어렵다”며 피해갔다.
“차광렬 회장이 핵심 인물”...“특별한 지원 없었다”
차병원그룹 특혜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복지부가 7년 만에 차의과학대학교의 체세포복제배아연구 계획을 승인한 배경에 박 대통령 주사제 대리 처방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차광렬 회장은 최순득과 같은 아파트에 오래 거주했고, 차움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대리처방, 무상진료가 이뤄졌다”며 “차 회장이 정권과 결탁한 결과 줄기세포 연구 승인이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은 “차병원그룹이 아무리 뛰어나도 비동결난자연구 승인, 배아검사 항목 확대, 제대혈 공공관리 등 정부 정책의 혜택을 계열사 전체가 입는다면 의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지부 1500억원 글로벌헬스케어펀드를 운용하는 차병원그룹 계열사 솔러디스인베스트먼트는 실적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왜 선정됐는지 의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정진엽 장관은 “운용사를 선정한 건 복지부가 아니라 중소기업청 산하의 한국벤처투자다. 심의를 거쳐 KB인베스트와 솔리더스가 공동운용하게 됐다”며 “복지부에서 차병원 특혜라고 할 만한 지원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체세포복제배아연구 승인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 부인했다. ‘5‧18 규제장관회의’ 때 박 대통령이 비동결 난자를 활용토록 하라는 주문에 당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조건부 승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복지부는 비동결 난자를 활용하는 것은 여성계, 사회, 과학, 종교계의 합의가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따로 소명하는 세션까지 요청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생명윤리법이 허용하는 동결, 미성숙 난자만을 사용하는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