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신 환자분들께는 꼭 권해드리는 게 ‘안저검사’입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 설명이 여의치 않으면 보호자를 붙잡고서라도 반드시 얘기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삶에 치명적인 실명(失明)을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를 놓친 환자분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치아 건강을 위해 일상화된 ‘스케일링’처럼, 눈 건강을 위해선 안저검사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귀찮다는 환자들도 꼭 붙잡고 설명하는 안저검사, 인식 제고 시급"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윤상원 대한안과의사회 공보이사(강남큐브안과 대표원장)[사진]는 “일반 국민들의 안저검사 인식 제고를 위해 대한안과의사회 차원에서 수 년 째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아쉬워하며 “안질환 유병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민적인 관심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저검사는 시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망막, 시신경, 망막혈관 상태를 확인하는 진료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난치성인 황반변성을 비롯해 뇨망막병증, 녹내장 등 3대 안과질환을 조기 발견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실명을 유발하는 3대 안과 질환자는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녹내장, 당뇨병망막변증, 황반변성 등 실명의 주된 원인인 3대 안질환 진료 환자는 최근 5년간 총 773만명을 넘었다.
한 해 새롭게 발생한 환자수도 2015년 118만명에서 지난해 151만명으로 30% 가깝게 증가했다. 진료비 또한 같은 기간 3373억원에서 6181억원으로 두 배정도 늘었다.
학계는 일찍이 안질환자 급증을 예상하고 대처에 나섰다. 윤 이사가 속한 대한안과의사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 10일 ‘제 49회 눈의 날’의 주제도 ‘안저검사’로 정하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안저검사 필요성을 피력한 의사회 노력으로 보건소에선 검사료를 할인해주는 1만원짜리 쿠폰을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자들 인식은 아직 미미해 수검자는 좀처럼 늘어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윤상원 이사는 “안질환으로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조차 안저검사에 ‘시큰둥’한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일반인들이 따로 안저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고 말했다.
윤 이사는 경인지역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봤다. 안과는 나이가 들며 시력이 안좋아진 환자들이 많아졌다. 특히 나이든 환자들일수록 건강정보를 접하기가 어려워 검사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더 잦다. 상태가 악화된 채 병의원을 찾게 되면 치료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잠깐의 '귀찮음'을 감수한다면 치명적인 안질환을 예방하는데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윤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검사를 받는다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안저검사는 아주 간단한 검사로 소요시간도 길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저검사는 불빛이 발생하는 안저카메라를 이용해 눈의 안쪽을 살피는 검사다. 안저카메라를 사용해 ‘1초’ 촬영을 하면 끝나정도로 검사 자체도 간단하다.
안저검사를 하기 위해선 눈에 약물을 넣어 동공을 확대(산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계에 따르면 단순히 질환을 스크리닝하기 위해선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무산동 검사로도 충분하다.
최근에는 많은 병의원이 무산동 안저검사 장비를 도입하기 시작해 편의성도 훨씬 높아졌다.
윤 이사는 “좀 더 직관적으로 설명하면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동맥을 볼 수 있는 곳이 안저다. 이상상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대부분 질환의 초기증상을 살필 수 있기 때문에 환자를 보는 의사 입장에선 검사를 적극적으로 권유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에 높은 의료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의사회에서도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는 것”이라며 “저비용에 양질의 의료혜택을 더 많은 국민이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검사 간단하고 비용 저렴, 국민건강검진 항목 포함돼야"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2년차에서 제외된 안저검사"
그러나 의료계 차원의 홍보에는 한계가 있다고 윤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온라인, 오프라인 다양한 채널을 위해 필요성을 알리고 있지만 실제 환자들의 발걸음을 병의원으로 향하게 하기엔 역부족이란 것이다.
하지만 정책은 의료계의 다급한 마음과는 달리 거꾸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은 앞서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을 실시, 참여자에게 맞춤형 검진바우처 당뇨합병증 검사를 통해 안저검사를 제공했다.
하지만 안과의원 참여율 및 수검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올해 2년차 시범 사업부터는 아예 안저질환 검사를 항목에서 제외했다.
학계는 "안저검사가 국민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이나 직장을 통한 건강검진만으로는 유병 가능이 높은 환자들에 대한 충분한 검사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3대 안과질환 중 황반변성은 1차산업 종사자일수록 더욱 취약하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대한안과학회에 따르면 소득이 적고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위험성이 높다.
윤 이사는 “시력이 감소하는 질병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대한안과의학회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황반변성으로 인한 진료비, 치료비, 생산성 손실비용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6900억원에 이른다. 생산성 손실비용도 연간 약 1300억원에 달한다.
그는 이어 “환자들의 노동 능력이 감소하고 이는 곧 막대한 경제 생산성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도 국가가 주도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안저검사가 국민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되려면 국가 차원에서 관련 장비를 내과 등 병의원에 지원해야 한다. 만일 내과에서 안저검사를 하려면 별도 인력도 둬야 한다. 윤 이사는 이러한 기반을 갖추는데 적잖은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윤 이사는 “국민적 공감대와 국가 추진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초기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국민건강과 경제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합리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윤 이사는 안질환 중에서도 녹내장이 전문분야다. 영등포 김안과병원 녹내장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오랫동안 안저검사의 질환예방 효과에 대해 강조해왔다.
윤 이사는 “해외에선 이미 안저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AI(인공지능)를 이용해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안저검사 활용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현재 국내 실정을 미뤄봤을 때 이 같은 논의는 요원하기만 하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안저검사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전국 각지에서 진료 중인 안과전문의들 역할도 중요한데 평소 환자들에게 눈 검사 중요성에 대해 짧게라도 설명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라며 “저부터라도 안저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안내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