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上] 의료계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의 궁합이 심상찮다.
서로를 탐색하며 ‘썸’을 타던 이들의 ‘파격’ 조합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고, 이내 각종 정책을 함께하며 상호 힘을 실어주는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양측의 밀당은 지난 2013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환자-의사 간 원격의료,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등 의료계와 야당이 정의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이 즐비했다.
약한 고리로 출발한 연대 갈수록 공고
새정연은 뜻을 같이 하는 의료계에 정책적 연대를 제안했고, 의료계는 그 손을 잡았다. ‘약한 고리’라는 일각의 평가가 있었음에도 이후 이들의 공조체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의료영리화 저지 활동을 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해서 인지 이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를 더욱 세심하게 살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근) 사태 이후 의료기관 피해보전 논의다.
당시 야당은 추가경정예산으로 마련된 1000억원의 손실보전 예산 규모가 너무 적다고 지적, 3500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 규모 산출 기준 제시, 의료기관 손실 규모 취합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야당은 감염병을 이길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를 갖추기 위한 투자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향후 메르스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민간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인을 마련하고자 했다.
결국 2500억원 배정에 그쳤지만 당초안보다는 크게 증액된 결과다.
의료계로서는 새정연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의료계는 피해보전에 대한 불안과 그 수준에 대한 의구심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는 의료계에 새정연의 협상 결과는 식솔을 책임지는 ‘가장의 월급봉투’과 다름없었다.
의료계는 그 마음을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지지하며 전달했다. 당시 새정연은 감염병연구병원 1개소와 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3개소를 신설하는 ‘3+1 공공병원’ 구상을 내놓고 정부와 끈질긴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야당은 ‘3+1 공공병원’ 구상을 메르스 피해 의료기관 손실 보전 논의와 한 데 묶어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의료기관 손실보전은 그 규모를 떠나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는데,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3+1 공공병원’에 대한 ‘해결’이 필요했다.
‘3+1 공공병원’ 논의가 몇 차례나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을 의료기관 손실보전이 제공한 셈이다. 조속한 피해 보전이 절실했던 의료계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이를 지켜봤다.
이들의 찰떡궁합은 의료계 ‘약자’로 불리는 전공의와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이어졌다.
새정연 김용익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 지난 7월 31일 전공의 권리 보호와 환자안전, 우수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한 ‘전공의특별법’을 발의했다.
수련제도 도입 60년 만에 처음으로 ‘전공의’만을 위한 특별법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현행 수련제도가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 양성 및 환자에 대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의원급 의료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의원3법’ 역시 준비 중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핵심이다.
이는 비단 김 의원만의 정책이 아니다. 김 의원은 준비 과정부터 ‘당론’ 추진을 천명해왔고, 새정연 정책위원회 역시 후방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외 의료계는 야당과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 추진을 위해 간담회를 갖고 함께 기자회견을 하며 협력하고 있다.
김용익의원 주도 ‘친(親) 의료계 정책’ 잇단 발의
의약분업 이후 양극단을 달렸던 의료계와 새정연이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결국 접점을 이뤘다.
이를 가능케 한 가장 근본적 이유는 두 집단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중심을 향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노환규 집행부 때부터 대한의사협회에서 정책, 대관 업무 총괄 등을 맡으며 각종 정책을 담당했던 강청희 상근부회장과 새정연 정책위원회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총괄하는 조원준 전문위원의 공통된 분석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의료계는 정책 추진에 있어 의사 목소리에 대한 사회 수용성이 높지 않은 현실을 인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정책 채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사회 지도층이자 강자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의사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실제 그러하다.
강청희 부회장은 “교육 수준은 사람들의 인식과 비슷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사 목소리는 노조보다도 작았다. 정책 추진에 있어 사회적 기득권을 상실한 것”이라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료계에 허락된 자리가 ‘운전석’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 사례가 지난해 3월 의료영리화 저지를 위해 진행된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이었다.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명령과 5억 원의 과징금, 그리고 대한의사협회와 노환규 前 회장, 방상혁 前 기획이사에 대한 검찰고발을 의결했다.
의협이 다시금 ‘파업’ 카드를 뽑지 못하도록 관용 없는 처벌로 단속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시 파업은 의료계에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의권 회복’을 위한 외침과 국민의 욕구가 맞아떨어졌을 때 어떠한 파괴력을 지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파업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지지 성명을 냈고, 야당은 파업에 우려를 표했지만 ‘의료 영리화 저지’라는 파업 목적에 찬성하며 힘을 보탰다. 파업 지지 여론이 사회 전반에 형성되며 의료계의 대정부 협상력 등이 강해질 수 있었다.
조 전문위원은 “국민이 함께하는 의권 회복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 뜻과 함께할 때 그를 지렛대 삼아 대정부 협상력을 높이고 다른 직역 및 야당,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각 조직 간 쟁점은 여전하지만, 협력할 것과 대립할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관계가 설정됐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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