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 산부인과 의사 씨가 마를 것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1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2차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산부인과가 처한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해 경고했다.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들 집단 사직으로 이른바 필수의료로 불리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가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김재연 회장은 "레지던트 임용 대상자 474명 중 남은 산부인과 전공의는 38명뿐이며, 사직한 전공의 중 산부인과의원에 취직한 경우는 48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 씨가 마를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
이어 "이런 현실은 산부인과 의사 씨가 마를 것이란 우려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면서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보상, 그리고 높은 소송 위험이 산부인과 의사 이탈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대다수 대학병원의 산과 교수는 1~2명뿐이며 62%는 한 달에 6~10회 이상 당직을 서는 등 혹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산과 보험 진료는 원가보전율이 61%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위험 임산을 맡다보니 소송 위험이 높고, 최근 10~15억원에 이르는 고액의 배상 판결이 나오고 있다. 전국 대학병원 산과 전문의 4명 중 3명이 사직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만사고 배상 국가책임제 전환" 요구
조병구 부회장도 "산부인과 위기는 단순히 의료계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저출산 문제 해결과 국민 건강 유지를 위해 정부는 산부인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의료사고에 대한 보험 지원, 분만 의료기관 지원, 산부인과 의사 처우 개선 등을 촉구했다.
정부는 형사처벌 특례법 체계 도입을 위해 의사 또는 의료기관 책임보험과 공제 가입을 의무화하고 손해배상과 보험료 적정화를 반영한 공제를 개발, 의료기관 안정 공제회 설립 등을 제시했다.
김재연 회장은 "기존 의료인들이 가입하고 있는 의협 공제회와 각 진료과에서 운영 중인 다양한 의사 배상보험이 있음에도 중복 기능이 예견되는 의료기관 안전 공제회 설립은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제회 설립 예산과 필수의료 전액 국가 배상기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면서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621명에게 1인당 463만5500원의 보험료를 50%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분만사고 배상 국가 책임제 전환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만병원 지원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지역 간 지원금 차등 지급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이인식 부회장은 "특례시는 분만건당 110만원, 광역시는 55만원을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서울과 경기, 인천과 경기는 같은 생활권임에도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차등해서 지급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원금을 행정구역이 아닌 생활권을 기준으로 지급하고,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면서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의 인센티브 제공이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정책 재검토 및 적자 상태인 분만 산부인과에 실질적인 긴급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필수의료 인력 및 인프라 확충, 역량 강화 지원을 위한 지역의료 발전기금을 신설하고, 소멸 직전의 지역 분만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