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띠링~ 대기 순번 95번째입니다."
즐거워야 할 추석 연휴.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답한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소아청소년과 진료대란. 위의 95번째는 연휴 마지막 날 오전 둘째 아이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소아청소년과 예약 어플을 돌린 직후 배정받은 숫자다.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 진료받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소아청소년과 내원 계획을 철회했다.
금년 상반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쌍둥이를 얻었다. 무럭무럭 잘 자라던 아이들은 근래 아데노 바이러스라는 불청객과 만났다. 첫째가 발열과 함께 기침을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둘째에게 전염돼 4주간의 긴 투병기(?)에 돌입했다. 양가를 비롯해 온 집안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아빠가 의료계 전문언론에 몸 담고 있는 만큼 부지기수로 소아청소년과 문제를 다뤘지만 기자가 아닌 부모 입장에서 직접 겪은 진료대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은 상상을 초월했다. 개원 한 시간 전(前) 두 아이를 둘러업고 의료기관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부모들과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2주 넘게 기침과 콧물이 떨어지지 않던 무렵.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긴 연휴 탓에 응급실을 방문할 상황이 발생할까 문득 두려워졌다.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방문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체감한 입장에서는 애가 탔다. 관련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분들의 걱정은 더 컸으리라 짐작된다.
보건복지부가 수년 전부터 도입 및 확대했던 달빛어린이병원도 거주지 인근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미리 달빛어린이병원을 알아봤지만, 이용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결국 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를 무탈하게 넘겼던 아이들. 하지만 연휴마다 반복될 아이들의 소청과 진료 예약과 어려운 응급실 이용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고난은 계속될 것 같다.
쌍둥이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을 때 안타까운 장면도 목격했다. 순서를 기다리던 도중 진료를 마친 환아 부모가 진료 의사가 친절하지 않았다며 뒷담화(?)를 한껏 펼치는 장면이었다.
현재 전문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이유에는 진료 난이도 대비 저수가도 있지만, 각종 송사와 민원 등 소위 말하는 악성 및 진상 환자들 한몫했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 순번이 다가와 진료실에 들어갔지만 뒷담화와 달리 담당 의사는 굉장히 친절했다. 사람을 가려 친절 진료를 했을리는 없을 터라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제 소아과 진료현장에서는 많은 악성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지역 유일의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환자 민원으로 폐업을 결정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또 모 의원은 부모가 아이를 혼자 병원에 보내 돌려보내자 진료 거부로 신고했다.
현재 대학병원급 소아응급실에서는 당직을 맡을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많은 민원과 소송, 업무 과중을 이유로 현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응급실에서 당직을 설 전문의가 줄어드는 지금. 떠나기 전에 그들 마음을 돌릴 우리들의 넓은 이해와 새로운 대책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내 아이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그들이 우릴 외면하면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