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국내 유일 ‘의학사연구소’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의료가 처한 현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문제점 진단 및 성찰을 통해 의료가 사회에 기여토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의대증원 사태로 1년째 이어지는 의정갈등과 함께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 내용이 포함되면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의사 출신으로 의학사 연구에 임하고 있는 여인석 소장[사진]을 만나 탄핵 정국 속 대한민국 의료 상황을 진단했다. [편집자주]
“비상계엄 자체가 사적 동기임을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전공의 처단’이 포고령에 포함된 부분이다. 개인적 행동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모르겠다. 결국 의료적 이슈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일련의 모든 일들은 나중에 평가받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의료인을 반국가세력으로 명시"
탄핵 정국에서 대한민국 의료가 처한 상황에 대해 여인석 소장은 이 같이 말했다. 국내 유일무이한 ‘의학사’ 전문 연구소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내놓은 답이다.
대한민국에서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은 그동안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파업을 시작으로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반대 파업 등이 굴곡진 역사가 적잖다.
문제는 급기야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 등 의료진을 반국가세력으로 지칭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의료계 공분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여인석 소장은 “계엄 자체가 사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포고령에도 전공의가 들어갈 내용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어떤 평가를 내리기에도 전례가 없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보적 수준의 어떤 인권에 대한 인식 등이 문제라면 문제”라며 “2000명 증원이라는 흐름과 의료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부분 등은 의학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선 17회 비상계엄이 선포됐지만 포고령에 의료인을 처단한다는 조항이 담긴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다. 의료인을 반국가세력으로 삼은 포고령은 없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인 50년대 말엔 군의관을 국가에서 제대시키지 않고 오래 붙잡고 있는 경우는 있었다”며 “당시는 군부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기였기에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 절차·내용 모두 문제···필수의료 해결 수단은 다양"
정부 의대증원 발표 이후 1년이 넘도록 의정 갈등이 첨예하다. 물론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정부가 의대정원 회귀를 제안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증원 회귀 전제 조건 등을 두고 설왕설래 중이다.
여 소장은 의사 수 부족은 인정하면서도 제도에 있어서 절차적인 문제, 그리고 내용적 문제가 산재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의대증원 정책 자체와 연속된 상황들을 정치적 행보로 평가했다.
그는 “고등교육법도 대입 관련 큰 변화를 앞두고 최소 2년 전에는 발표토록 돼 있다”며 “그런데 갑작스런 2000명 발표는 필요한 숫자인지도 의문인 상황에서 절차적으로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증원은 필수의료 해결 등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며 “수단은 다양하게 바뀔 수 있는데 숫자 자체가 목표이다 보니 2000명에 정책을 끼워 맞추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증원이 사회적 수요가 아닌 정치적 이해라는 반증”이라며 “미용 분야 의사들을 필수의료로 어떻게 데려올지 시스템 구축, 보상 마련 등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와 정부 간 갈등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논쟁 거리다. 의료인의 의료 독점권은 국가의 면허로서 발휘되기 때문에 국가 권력과의 관계를 맺어왔다.
실제 여러 국가들이 그동안 의사 독점권을 제한하거나 의사 수가 단순히 늘어난다고 해서 의료 수준이 크게 발전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은 권위에 대한 거부였기에 의대 시스템을 부정하고 의사 독점권을 없애기도 했다”며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었지만 무자격 의료 난립 등을 초래해 결국 실패했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역사적 선례 있는 이슈, 이를 고려한 정책 제정 및 개혁 필요"
그는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통상 다른 나라 제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러한 선례를 기초한 의료정책 제정 및 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여 소장은 “과거에 필요했던 게 지금도 동일할지 모르지만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움은 될 것”이라며 “정책은 구성원들의 합의되는 가치관이 있어 현실적으로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를 낳았던 역사적 경험들이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 참고해야 한다”며 “그게 역사의 효용성으로 현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제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미래 의료환경 변화에 의학사적 지식 함양과 더불어 후학들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으로 ‘여유’를 꼽았다.
그는 “모든 의료행위에 어떤 가치를 우선시 해야 하는지를 봐야 한다”며 “정책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등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이든 로봇이든 기술적 발전에 따른 편의성과 함께 의사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그런 가치들을 설정할 수 있는 훈련이 올바른 방식의 발전”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교육과정에 대한 접근은 충분한 고민과 여유를 갖고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현실은 바쁘게 여유 없이 가르치고 있다. 결국 가치에 대한 얘기는 여유가 있어야지 돌아볼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