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굴곡진 시간이었다. 외부는 물론 내부의 냉대 속에 기틀 마련조차 쉽지 않았다.
소아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안과, 소아비뇨기과 등 다양한 진료 분야에 ‘소아’를 전문으로 하는 분과학회들이 즐비했지만 유독 이비인후과 만큼은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소아청소년과 반발이 거셌다. ‘상기도’라는 영역이 겹치는 탓에 환자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소청과 의사들은 소아이비인후과 태동이 달가울리 없었다.
그렇다고 내부적으로 환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모학회인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회의적이었다. 분과가 너무 많아지면 학문 통합이 어려워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연세의대 정명현 교수를 위시한 일부 교수들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단순한 분과 신설이 아닌 세계 의학계 패러다임 순응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는 판단이었다.
독자 행보 보다는 모학회 의견을 존중하며 기다림을 택했고, 국제적으로도 소아이비인후과학 비중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그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그 결과,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서 분과학회 자격을 얻었고, 대한의학회의 비회원 학회로 승인을 받으면서 제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정식학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대한소아이비인후과학회 김영호 회장은 서러움으로 점철된 세월을 디딤돌 삼아 힘찬 비상(飛上)을 자신하며 지난 2023년 1월 취임했다.
누구보다 학회의 굴곡진 역사를 잘 알기에 결연한 의지와 열정으로 회무를 시작했으며 학술활동, 교육, 사회공헌에 이르기까지 광폭 횡보를 통해 학회 발전과 위상 강화를 도모했다.
무엇보다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대한소아청소년 외과의사연합에 가입해 국내 소아이비인후과의 현실을 알리고 회생을 위한 대책을 적극 제시했다.
"의사들이 보람으로 버티던 시대 종식, 특단 대책 절실"
"정부 정책 소외된 소아이비인후과, 수술‧처치 등 각종 수가 보장받지 못해"
김영호 회장은 “그동안 소아이비인후과는 정부 정책에 소외된 탓에 수술, 처치 등 각종 수가도 현실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수가를 비롯해 고난이도 수술 기피로 인한 전문인력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소아이비인후과가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진료환경 개선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대한소아청소년 외과의사연합에 가입했다.
김영호 회장은 “보람만으로 버티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며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소아이비인후과 중증진료 시스템 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어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적재, 적소, 적시에 치료 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이 정책 1순위가 되도록 전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영호 회장은 지난 2년의 임기 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소아이비인후과를 택한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도 이어왔다.
젊은의사들에게 학회 차원에서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최근 진행된 추계 학술대회에는 전공의들의 등록비를 받지 않았다.
가뜩이나 수련현장을 떠나 배움의 기회가 줄어든 전공의들이 편하게 학회장을 찾아 소아이비인후과학을 경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아울러 김 회장은 학회의 사회공헌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조직 내 사회공헌 이사직을 신설해 소아이비인후과 영역에서 사회안전망 구축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특히 국내 소아장애아동 의료비 지원사업을 위해 별도 기금을 마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전달한 바 있다.
김영호 회장은 “코로나19에 의정사태까지 겹치면서 당초 계획의 절반도 수행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며 “내년 출범하는 신임 집행부를 중심으로 소아이비인후과학 발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호 회장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과장을 역임했다.
2023년 1월부터 대한소아이비인후과학회 회장을 맡아 학회를 이끌었다. 임기는 오는 12월 3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