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체계는 오랫동안 병원 중심 치료에 집중해 왔으나, 환자가 퇴원한 이후 병원 밖에서의 질환 관리와 돌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는 환자들이 병원을 떠난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돌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해 건강 유지와 삶의 질 향상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돌봄은 공식적인 지원보다는 개인이나 가정의 책임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환자나 노인은 중복 질환을 진단받거나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며, 이로 인해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가정의 삶도 극도로 어려워질 수 있다.
"초고령화사회 진입, 돌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
만성질환자 증가와 초고령사회로의 빠른 진입으로 인해 돌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치료와 돌봄이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었지만, 만성질환자의 경우 치료와 돌봄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더 나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1형 당뇨를 앓는 아이의 가족이 평생 동안 아이 질환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은 단지 1형 당뇨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돌봄 부담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이 경제적·정신적 압박 속에서 절망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일이 특정 계층이나 일부 가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범한 가정도 장기적인 돌봄 부담과 의료비 증가로 인해 한순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가정이 붕괴되기도 한다.
따라서 병원 내 치료뿐만 아니라 병원 밖에서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데이터 활용한 '돌봄' 혁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과 의료데이터를 결합해 병원 밖에서도 환자와 돌봄 대상자의 건강 상태를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데이터 표준화 및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며,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적극 도입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기 위해 관련 제도와 정책이 마련돼야 하며, 환자와 보호자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문해력(health literacy)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돌봄 대상자의 사용자 경험과 선호도가 서비스 개발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환자가 일상에서 의료기기 등을 통해 직접 생성하는 건강 데이터(PGHD: Patient Generated Health Data) 표준화와 기존 의료데이터와의 통합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환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맞춤형 케어를 제공할 수 있다.
또 환자와 보호자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인식 개선 캠페인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돌봄에서 돌봄 대상자(환자)나 보호자 역할은 의료시스템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이다.
돌봄 대상자의 실질적인 요구와 어려움이 서비스 개발 과정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논의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앞으로 의료체계는 병원 중심에서 벗어나, 환자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건강 관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 같은 변화가 진행될 때 우리는 돌봄 부담을 줄이고 보다 지속 가능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돌봄 대상자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