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11] “왜 혈액점도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우리 몸에 혈액 순환을 잘 유지하기 위해, 특히 말초혈관 순환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다” 라고 답할 수 있다.
큰 혈관은 죽상동맥경화로 시작한 혈관 폐색(occlusion)으로 혈액 순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우회로 수술이나 스텐트삽입(PTA)으로 혈액 순환을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큰 혈관의 혈액 순환은 정상이지만 말초혈관 순환에 장애가 있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심장질환자 중 심장증후군X(Cardiac Syndrome X)로 분류되는 경우 관상동맥에는 혈(血) 유동에 영향을 주는 혈전은 없지만 관상동맥 뒤에 있는 미세혈관에서의 혈 유동 장애로 인해 통증이 발생한다.
또한 아물지 않는 하지 족부 조직 괴사와 극심한 통증이 동반하는 환자의 경우 수액, 혈관 확장제, 항혈전제 등의 약물치료로 말초혈관 순환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고, 패혈증(sepsis)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하지 절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김두상, 중앙보훈병원)
말초혈관 순환 장애 원인으로 혈액과 함께 움직이는 혈구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중 적혈구는 혈액 부피의 35~50%를 차지하고, 수명은 120일인데, 오래된 적혈구들은 세포막이 단단해져서 변형율이 감소한다.
오래된 적혈구들은 대부분 간과 비장에서 제거되지만, 이 때 제거되지 않은 적혈구들은 노폐물로 모세혈관 입구에 쌓이게 돼 말초혈관 순환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당뇨환자들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적혈구 변형율이 감소하므로 말초혈관 순환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더 높다.(김두상, 중앙보훈병원)
월경, 사혈, 헌혈 등 혈액점도 감소 영향
폐경 전 여성들은 월경을 통해 오래된 적혈구들이 새로운 적혈구들로 대체되고 말초혈관 순환이 개선돼, 세포 조직에 영양분과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Framingham 연구는 24년 동안 2873명의 여성을 추적한 결과, 폐경 전(前) 여성은 심장마비를 겪거나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는데, 지속적으로 오래된 적혈구들이 새로운 적혈구로 대체되면서 얻어지는 혜택이다.
월경과 비슷한 모델로 사혈(Phlebotomy)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헤마토크리트에 대한 사혈 효과는 수일에서 최대 몇 주 동안만 지속됨이 보고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혈에 의한 헤마토크리트 감소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인 반면, 사혈에 의한 혈액점도의 감소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됐다.
그 이유는 오래된 적혈구 일부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면서, 젊고 부드러운 세포막을 가진 적혈구들의 변형율이 증가해 장기간 혈액을 더 묽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혈이 잠시 적혈구 수를 감소시키지만 몇 주 안에 예전 적혈구 수를 회복한다는 사실은 사혈의 안전성 측면에서 중요한 점이다.
사혈과 비슷한 헌혈이 있다. 헌혈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450mL 헌혈)에서 헤마토크리트와 혈장 점도는 즉각적으로 상당히 감소했는데, 이는 헌혈 과정 중에 발생하는 빠른 체액 이동에 기인한 현상이다.
헌혈 중 감소된 총 혈액량은 미세혈관내 정수압(intravascular hydrostatic pressure)을 감소시키는 반면 삼투압은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압력 사이의 균형이 깨지고, 두 힘 사이의 균형을 회복할 때까지 유체 이동이 계속돼 혈관 내 공간으로 물이 유입되고, 헌혈 후 혈장 점도가 감소한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헌혈의 경우에도 오래된 적혈구의 일부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면서 적혈구 변형율의 증가로 장기간 혈액점도가 감소하게 된다.
헌혈을 일 년에 서너 번 씩, 30~40년 평생 하시는 분들도 주위에 있는데, 이 분들도 언젠가는 헌혈을 끝내는 시점이 온다.
헌혈을 하지 않는 분들에 비해 평생 헌혈을 해 왔던 분들의 경우, 나이 60세에 헌혈을 중지했을 때 적혈구가 만들어지는 조혈과정은 당분간 계속돼 적혈구 수가 상당히 증가할 수 있다.
이때 혈액 점도도 상당히 증가해서 임상적으로 여러 심각한 증상들(예를 들어 눈이 안보여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이 올 수 있다.
평생 헌혈을 해 왔던 분들을 위해 헌혈기관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주지하면 좋을 듯싶다.
“혈액 희석, 혈액점도 및 산소전달 개선·부작용 무(無)”
혈액 희석(Hemodilution)은 혈관질환 위험 프로필을 감소시켜 결과적으로 허혈을 개선하거나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난 별도 치료 방식이다.
혈액 희석 세 가지 유형은 저혈량성 혈액희석, 등용(Isovolumic) 혈액희석, 고혈량성 혈액희석이 있다. 이중 어떤 혈액 희석 유형을 사용할 지를 결정하기 위해 임상의는 환자의 체적 균형(volume balance)을 잘 고려해야 한다. 치료적 사혈 후에 시행되는 저혈량성 혈액희석은 명백한 고혈량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혈액 희석에 대한 전형적인 후보는 울혈성 심부전, 이차성 부갑상선증(secondary parathyroidism), 폐색성 폐질환, 적혈구 증가증, 초기 간경변 및 초기 치매(빈혈이 아닌 경우)가 있는 환자이다.
등용 혈액희석은 치료적 사혈과 체적 보충 주입 요법의 조합을 통해 상당히 일정한 혈액량 균형을 유지한다.
혈액 희석에 사용되는 혈장 대체 및 보충은 알부민, 아미노산, 덱스트란(Dextran) 40 및 Dextran 70, 및 히드록시에틸전분(hydroxyethylstarch)으로 구성된다.
고혈량성 혈액희석은 바이패스 수술 중에 주로 사용된다. 우회술 후 환자는 일반적으로 헤마토크리트가 29 또는 그 근처에 있는 상태로 병원을 떠난다.
환자 수술 전에 헤마토크리트가 대개 40 이상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수술을 통해 사혈 효과를 얻어 혈액점도가 상당히 개선되고 이 효과가 오랜기간 지속됨은 수술의 간접적인 혜택으로 볼 수 있다.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난치성 통증, 치유되지 않는 궤양 및 괴저(gangrene)를 특징으로 하는 Rutherford Grade III, Category 5 또는 6에서 조직 손실이 있는 중증사지허혈(CLI) 환자에서 등용 혈액희석을 통한 말초혈관 유동 개선으로 주요 절단 비율을 감소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연구가 김두상 교수팀에 의해 중앙보훈병원에서 수행됐다.
대상자는 표준치료 대조군으로서의 기존 요법(CT) 및 혈액 희석(HT) 두 개 군으로 나눴고, 혈액 희석 그룹의 경우 연속 4주에 걸쳐 매주 250ml의 전혈을 제거한 뒤 히드록시에틸전분용액을 주입해 혈액 희석을 실시했다.
혈액점도, 헤마토크리트, 헤모글로빈, 발목상완지수(ankle-brachial index), VA 통증 척도, 입원으로부터 절단까지의 시간 및 생존 기간을 측정했다.
평균 헤마토크리트는 36.6에서 35.1로 점진적으로 감소한 반면 이완기 점도는 같은 기간 동안 크게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헤마토크리트와 이완기점도의 비율로 정의되는 조직산소전달지수(TODI)는 52% 증가해 환자의 산소 전달이 개선됐음을 시사했다.
하지 주요 절단 평균 비율은 대조군에서 93%인 반면 혈액 희석 그룹에서는 31%였다. 무절단 생존기간 중앙값과 무절단 5년 생존율은 대조군이 1.2개월, 7%인 반면 혈액 희석군은 30.2개월, 44%였다.
혈액 희석 그룹에서 반복적인 혈액 희석으로 인한 부작용은 없었다. CLI 환자 등용 혈액 희석 치료는 내약성이 우수하고 CLI 악화로 인한 주요 절단 비율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