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잘하는 병원 가려고" 발언과 지역의료
2024.01.09 15:37 댓글쓰기

[수첩] 지난해 8월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대한의학회지에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권역외상센터 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연구였다.


구체적으로 권역외상센터 예방 가능 사망률을 평가하는 모델이 미국의 오래된 수식을 사용하면서 국내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만을 제기하긴 했지만 정작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해당 평가에서 2019~2022년 4년 연속으로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본인들 기관에 최고점을 부여한 평가에 굳이 문제 제기를 한 이유가 궁금했다.


연구에 참여했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A 교수는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 돌아보니 평가도구 문제로 감점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한편으론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학창시절에 12과목 통틀어 한 문제를 틀리고는 분을 참지 못하는 전교 1등 친구 같았다.


하지만 그 지독함에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찾는 환자들은 목숨을 건졌다. 이 센터는 지난 2022년 외상환자 예방 가능 사망률을 6.16%까지 낮췄다. 2012년 35.2%에 달하는 예방 가능 사망률을 2025년까지 10% 이하로 낮추자는 권역외상센터 사업 목적을 이미 초과 달성했다.


A 교수는 “진료 질을 높이는 게 궁극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 생각하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독한 노력에도 일순간 ‘경험이 적은 병원’으로 낙인찍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다가 이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다.


번뜩 ‘왜? 굳이?’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권역외상센터는 해당 지역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최종치료 기관이다. 의료전달체계 상 그 다음 단계는 없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한 최고위원은 “잘하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서”라고 전원 이유를 밝혔다.


전원이 불법은 아니다. 치료받을 곳은 선택하는 것은 모든 국민 자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사과할 사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한마디에 국내 의료시스템의 온갖 문제들이 함축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선 전원 이유에는 지역의료에 대한 낮은 신뢰가 기저에 깔려있다. 물론 수도권과 지역 의료수준 격차가 상당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지역에서 ‘큰 병이다’ 싶으면 일단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한 지도 오래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국내 최초 독립형 외상센터를 구축해 오랜기간 중증외상환자를 돌봤더라도 정부 평가에서 전국 최고임을 인정받았더라도 그 인식을 바꾸진 못한 듯하다.


또 그 한마디엔 치료 적시성과 질환 수준과는 별개로 최고 단계 병원을 언제든 선택해 갈 수 있다는 인식도 담겼다.


사실 일반 국민에게 '의료전달체계'란 말도 낯설다. 3차병원(상급종합병원)은 동네병의원에 몇 번 갔는 데도 차도가 없어 보일 때 다음 옵션으로 떠올리는 큰 병원일 뿐이다.


이 두 가지 인식이 합쳐져 소위 ‘빅5 병원’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22년 서울지역 진료환자의 41%를 다른 지역에서 원정진료 온 환자들이다.


한정된 시설과 인력에 환자들이 몰리다 보니 의료진은 지쳐 이탈하기 시작했다. 


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받고자 수도권에 우후죽순으로 분원을 내고 있다. 분원이 들어서는 대로 젊은 의료인력이 몰릴 게 자명하다. 


이로 인해 지역 의료기관의 구인난과 경영난이 더욱 심해지고, 수도권과 지역의료 격차는 한층 더 벌어질 것이다. 이는 다시 도돌이표처럼 지역의료 신뢰를 낮추며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야당 인사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였을지 모르지만 ‘원정진료’, ‘병원쇼핑’, ‘지역격차’, ‘병상과잉’, ‘필수의료 붕괴’ 등으로 연결되는 문제 집합체의 도화선을 당긴 꼴이 됐다.


이 논란을 누군가는 불필요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폄훼하지만 오랜기간 이를 지적한 의료계에는 ‘발작버튼’과 같은 언사였다.


야당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 단독 통과시킨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취지처럼 지역의료 살리기에 더 적극 나서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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